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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에 해당하는 글(22)
2008.09.03   모리타 아키오 - 소니 창업자
2008.09.03   샘 월튼 - 월마트 창업자
2008.08.30   마이클 델 - 델컴퓨터 회장
2008.08.29   앤드류 그로브 - 인텔 전 회장
2008.08.27   하워드 슐츠 - 스타벅스 회장
2008.08.26   제프리 이멜트의 10가지 리더십 원칙
2008.08.24   워렌 버핏 -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2008.08.23   스티브 잡스 - 애플 회장
2008.08.22   월트디즈니 - 꿈과 비전 나르는 꿀벌형 리더
2008.08.21   이건희 - 전 삼성그룹 회장 (1)
2008.08.20   카를로스 곤 , 변화 혁신의 리더 - 르노 닛산 자동차 회장 (1)
2008.08.17   빌 케이츠 -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2008.08.16   마쓰시타 고노스케 - 마쓰시타 전기 창업자
2008.08.15   손정의 - 소프트뱅크 회장
2008.08.13   존 챔버스 - 시스코시스템즈
2008.08.12   이나모리 가즈오 - 교세라 명예회장
2008.08.11   요르마 올릴라 - 노키아 전 회장
2008.08.08   제프리 이멜트 - GE 9대 회장
2008.08.08   잭 웰치 - GE 전 회장
2008.08.07   메리케이 애쉬 - 메리케이 코스메틱스 회장
2008.08.06   장루이민 - 하이얼 그룹 회장
2008.08.06   허브 캘러허 - 사우스웨스트 항공 전 회장


모리타 아키오 - 소니 창업자
소니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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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CEO, 경영, 리더십, 모리타 아키오, 소니


샘 월튼 - 월마트 창업자
샘 월튼 리더십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


샘 월튼은 “종업원이 행복하면 고객도 행복하다. 직원이 고객을 잘 대하면 고객은 다시 찾아올 것이고, 바로 이것이 사업 수익의 진정한 원천이다”라고 말하면서 행복한 직원 만들기에 역점을 두었다. 그는 직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방식은 경영자가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과 똑같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성공적인 회사를 만들기 위해 직원들이 회장을 위해 일한다고 느끼는 대신, 경영자가 직원들을 위해 일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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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어느 날 미국 동부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
시 K마트라는 독점적 지위를 가진 할인점에 대항하기 위해 몇몇 중소 유통업체 사장들의 정기적 모임이 있었다. 이들은 우연한 계기로 10년 후 자기 회사의 매출규모를 예측해보자는 다소 엉뚱한 내기를 했다. 전년도 매출이 4천만 달러였던 A사 사장은 10년 후 자사 매출이 8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전년 매출이 6천만 달러였던 B사 사장은 10년 후 1억 달러를, 전년 매출이 1억 달러였던 C사 사장은 10년 후 1억 6천만 달러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각각 예측했다.
  그러나 전년도 4,4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D사 사장은 10년 후 전년 매출의 40배를 훌쩍 넘는 20억 달러를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바로 오늘날 세계 최대 매출규모를 자랑하는 월마트의 창업회장 샘 월튼(Sam Walton)이다. 기업은 그 기업을 맡고 있는 CEO가 꾸는 꿈의 크기만큼 자란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1962년 설립된 월마트는 1991년 시어즈 로벅을 추월해 미 소매업계 1위 자리를 차지했으며, 1992년 샘
월튼 사망 당시에는 2천여 점포에 38만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월마트는 월튼 회장 사후에도 성장을 계속해 3,500억 달러의 매출과 170여만 명의 직원을 고용한(2006년) 세계 최대 기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월마트 매출은 미국 전체 GNP(2002년 기준)의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국가별 GNP로 살펴볼 때 전 세계 국가 중 27위에 해당하는 GNP 규모에 이를 정도로 막대하다.

  월마트는 백화점 중심의 소매유통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물론, 유통이 제조보다 우위에 서게 함
으로써 전 세계 소비자들이 최저가에 제품을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자 중심 사회를 견인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Global Insight)사에 의하면 월마트의 저가 정책이 경제 효율성을 0.75% 향상시키고, 식료품비의 9.1%, 일반 공산품 가격의 4.2%, 전체적인 소비재 가격의 3.1% 하락을 가져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개인 소비자가 연간 895달러를 절약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며, 미국 인구를 기준으로 지난 1년간 전체 소비자가 절약한 총 규모는 약 2,630억 달러에 달한다.
  이와 같은 성과에 힘입어 샘 월튼 회장은 1998년 <타임>에 의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선정됐으며, 월마트는 경제전문지 <포천>에 의해 2003년, 2004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 선정됐다.

사회적 통념은 무시하라

대붕역풍비(大鵬逆風飛) 생어역수영(生魚逆水泳), 즉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헤엄친다’는 고사성어가 있다. 샘 월튼은 남이 가지 않은 길, 남과 다른 길을 감으로써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조했다. 샘 월튼은 1962년 K마트 등 빅(Big) 3가 대부분의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 5천 명이 안 되는 아칸소 주 로저스에 월마트 1호점을 오픈했다.
  그는 “사회적 통념은 무시하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일하고 있다면 정반대 방향으로 가야 틈새를 찾아낼 기회가 생긴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길을 잘못 들었다며 말릴 것에 대비하라.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인구 5만 명이 되지 않는 지역에선 할인점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라고 말리는 말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보스는 단 한 사람, 고객뿐이다. 고객은 회장에서부터 하부의 구성원들까지 모두 해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고객이 다른 곳에 돈을 쓰면 결국 우리는 일자리를 모두 잃을 수밖에 없다.” 고객의 중요성을 누구 보다도 잘 아는 샘 월튼 회장의 지론이다. 샘 월튼 회장은 회사가 절약하면 고객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신념으로 비용절감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 소비자에게 절약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는 ‘고객의 구매를 대행해주는 회사’라는 사명을 말뿐이 아닌, 구성원 모두가 실천하게 함으로써 세계 최고 기업을 일궜다.
  그는 ‘모든 가구의 생활비를 낮춰주고,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돈을 절약하고 더 나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매일매일 최저가(every day low price)로 고객들을 맞이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샘 월튼은 전 직원에게 “우리가 1달러를 낭비하면 고객의 주머니에서 1달러를 도둑질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하면서 절약을 독려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디어가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아이디어를 현실에 옮기기 위해 가공할 만한 노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샘 월튼 회장은 “하룻밤 사이에 성공을 거뒀다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여기에 오기까지 2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20년을 하룻밤처럼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해온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바로 승리의 월계관이다. 샘 월튼은 단기간에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대신, 평생에 걸쳐 최고의 유통조직을 건설하고 싶었다.

사업은 전적으로 ‘피플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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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 월튼은 사업이 전적으로 피플 비즈니스(people
business)임을 잘 알았다. 그는 고객과 직원에 대해 매우 ‘인간적’이었다. 임원들부터 시간제 근로자까지 모든 직원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었다. 샘 월튼은 사람들을 북돋아주고 독려하는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
  그는 늘 “우리 일은 전적으로 인간사업이다. 우리는 모두가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할 때까지 서로 나누고, 보살피고, 동기를 부여하고, 감사하고, 봉사함으로써 서로를 북돋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성공의 열쇠는 매장에 들어가서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최고의 아이디어는 창고에서 일하는 직원과 점원들에게서 나온다.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매장에서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다. 조직 하부에까지 책임감을 부여하라.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디어가 솟아나도록 하라”고 강조하면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샘 월튼은 “종업원이 행복하면 고객도 행복하다. 직원이 고객을 잘 대하면 고객은 다시 찾아올 것이고, 바로 이것이 사업 수익의 진정한 원천이다”라고 말하면서 행복한 직원 만들기에 역점을 두었다. 그는 직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방식은 경영자가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과 똑같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성공적인 회사를 만들기 위해 직원들이 회장을 위해 일한다고 느끼는 대신, 경영자가 직원들을 위해 일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샘 월튼은 직원들이 돈을 받고 점주를 위해 일하는 피동적인 신분이 아닌, 그들 역시 상점의 주인이라는 점을 인식시켜주기 위해 이익 분배 정책을 전면적으로 실시했다. 직원들은 그 정책에 자극을 받아 최선을 다해 일했다. 샘 월튼은 상하관계의 격식보다는 평등한 동료의식을 바탕으로 직원을 대했으며, 다른 사람의 정보를 경청하기를 즐겼다. 월마트에서는 직원(employee)이라는 용어 대신 동료(associat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직원과 CEO가 하나가 된 기업이 잘 되지 않을 리가 없다. 창업 이후 승승장구를 계속해 마침내 67세가 되던 1985년, 월튼은 미국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1985년 10월 <포브스(Forbes)>지에 ‘미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인물’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이내 각 방송 및 언론사의 리포터와 기자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미국 최고의 부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앞다퉈 달려갔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월마트 야구모자에 픽업 트럭을 몰고 다니는 시골 아저씨 한 사람뿐이었다. 그가 바로 세계 최고의 유통업체인 월마트를 만든 최대의 부호, 최대의 상인 샘 월튼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세계 최고 기업 창업주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았으며, 시간제 근로자들도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갈 수 있도록 늘 열려 있었다. 직원들에게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도록 솔선수범의 삶을 살았다. 리더십은 바로 이런 것이다.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리더십, 샘 월튼, 월마트


마이클 델 - 델컴퓨터 회장
‘자기만족’이 최대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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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성과를 기대한다면 남들과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 특정 산업에 정석처럼 굳어진
게임의 룰을 파괴해 독특한 사업 모델을 만들어가는 혁신자(Rule Breaker)야말로 탁월한 수익률과 장기적 성장을 이룩하는 사람들이다. 마이클 델 델컴퓨터 회장은 사업 모델의 혁신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창출한 대표적 기업가로 꼽힌다.
  마이클 델(Michael Dell) 회장은 27세에 최연소 세계 500대 부자, 34세에 미국 5대 부자, 40세 미만 세계 최고 갑부(공식 재산 2백14억 달러) 자리를 차지했으며, <파이낸셜 타임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재계 리더 명단에 여섯 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델은 18세이던 1984년 텍사스 의과대학 1학년 시절, 단돈 1천 달러로 델 컴퓨터를 창업했다. 델은 회사 설립 직후부터 사전에 대량 생산된 컴퓨터를 중간 판매상을 통해 판매하는 전통적 모델이 아닌, 고객으로부터 직접 전화(인터넷)를 통해 맞춤 PC를 주문받는 혁신적 기법을 도입하여 비약적 성장을 일궈냈다.
  이런 직접판매 방식(Direct Marketing)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혁명적 요소를 갖고 있었다. 재고 부담과 중간마진을 제로화함으로써 고객에게 매우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할 수 있었다. 또한 고객의 요구사항을 실시간으로 제품생산에 반영함으로써, 즉 고객 맞춤형 PC를 생산함으로써 고객만족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이 발상은 PC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IBM, 컴팩, HP 같은 메이커 PC보다 평균 20% 가량 저렴한 델 PC는 소비자들의 열렬한 갈채를 받았고, 매출액은 매년 50%씩 성장했다. 1988년 처음 증시에 상장할 때 1억5천9백만달러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2001년 3백10억 달러로 치솟았고, 2006년 6백 억 달러를 넘어섰다. 2001년 이후 수년 동안 전통적 강자인 IBM, HP 등을 물리치고 개인용 컴퓨터(PC) 부문 전 세계 1위를 달려왔다.
  한편 독특한 사업모델을 바탕으로 1998년에는 서버시장 진출 2년 만에 10위에서 3위로 점프했으며,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되기 전인 1998년에 이미 인터넷을 통한 매출이 1천2백만달러에 이를 정도로 인터넷을 사업에 제대로 활용해 전자상거래 선두주자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델은 고객에 집중함으로써 20분기 연속 고객만족 1위, 기업고객의 93%가 재구매하는 시장점유율 16%의 기적을 이루게 된다.
직접 고객을 대한다는 사업원칙은 델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됐다. 델은 12세 때 사람들이 소장하고 있는 우표를 모아 중개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파는 방식을 통해 2천 달러의 이익을 남겼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중개인을 거치지 않을 경우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다는 지혜를 얻었다. 16세 때는 <휴스턴 포스트>지 구독 예약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1만8천 달러의 돈을 벌어들였다. 고등학생 때인 1981년 그는 IBM PC를 보고 PC가 세상을 주름잡을 것을 예견했다. 그때부터 PC를 완전 마스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15번째 생일에는 부모님이 사주신 고가의 애플 컴퓨터를 당일 완전 분해해서 부모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혼자서 컴퓨터를 부수고 분해하고 조립해온 델은 중간마진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게된다. 당시 중간상들은 IBM PC를 2천 달러에 사서 3천 달러에 팔고 있었다. 그는 동일 부품을 구입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싸게 팔았다. 이것을 대량으로 하면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 의사가 되고자 했던 대학생활은 지루하고 따분할 수밖
에 없었다.

5초간 기뻐하고, 5시간 반성하라

개인용 컴퓨터가 막 나오기 시작할 때, 그는 이미 앞으로 10년 후엔 수백만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능숙하게 사용하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직접판매 방식을 통해 IBM을 뛰어넘는 컴퓨터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꿈을 안고서 델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대학을 그만두고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본인에게는 성공이 너무나 뚜렷이 다가왔다. 이후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그는 컴퓨터 업계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얼마 전 <비즈니스 위크>는 ‘델 컴퓨터가 해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까닭은 마이클 델 회장의 독특한 경영철학 덕분’이라는 재미있는 기사를 내보냈다. 인터넷 직접판매를 통한 박리다매 방식의 사업모델 이외에도 긴장을 결코 늦추지 않는 ‘압력솥(Pressure-cooker) 기업문화’가 델 컴퓨터의 또 다른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델에 위기가 닥쳐온 것은 1993년이다. 1992년 128% 성장률로 20억 달러 매출을 일궈냈으나 1993년에는 1989년부터 야심차게 준비해온 올림픽 프로젝트의 실패, 중간상을 통한 유통라인의 실패가 겹치면서 델 유럽의 구조조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델 회장은 승리는 영원히 반복되지 않는다는 전승불복(戰勝不復)의 지혜를 터득했다.
델은 ‘자기만족’을 기업경영의 최대 적으로 간주한다. 엄청난 판매실적을 거둔 직원들에게도 칭찬은 짧게 하는 대신 향후 더 나은 판매법을 찾아보라고 독려한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전사업부문으로 확산되면서 ‘5초간 승리를 기뻐한 뒤,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었는지 5시간 반성하라’는 슬로건까지 생겼다.  실적 우선의 ‘긴장된’ 기업문화 때문에 델 컴퓨터 직원들은 비용 절감 운동이 항상 몸에 배어 있다. 특히 매니저급 이상 간부들은 부품생산에서 매출에까지 비용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꿰뚫고 있다. 마이클 델은 승리를 경계하고 더 나은 개선점을 끝없이 추구하는 기업문화를 만듦으로써 델을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점점 복잡다단해지는 사회에서는 리더 혼자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업무 맡기고 전략구상에 투자해야 21세기 리더십의 핵심은 임파워먼트에 있다. ‘권한위양(Delegation)’이란 어떤 일을 떼어내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기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야말로 목표달성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업무이관 후 남는 시간을 보다 가치 있는 전략구상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파워먼트는 상사 자신을 위한 선택이
라 할 수 있다.
  마이클 델 회장의 리더십의 또 다른 측면은 권한위양, 즉 임파워먼트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관리자의 90%가 조직이 선택한 주요 목표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들은 비생산적인 비즈니스(바쁨) 때문에 중요한 비즈니스 (기업) 활동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21세기는 인재에 의해 승부가 갈리는 시대다. 마이클 델 회장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재를 활용할 줄 알았다. 일반적으로 승진을 시킬 때는 더 큰 성과를 창출해달라는 기대와 함께 보다 막중한 임무를 맡긴다. 
  그러나 델 회장은 “승진한 직원에게 책임을 더 많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덜 부여하라. 사업이 급속하게 성장하면 업무책임이 지나치게 방대해지고 업무규모도 너무 크거나 복잡해지기 쉽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하는 야심가라 할지라도 개인적 경력개발을 희생하거나 완전히 녹초가 되지 않고는 업무를 완수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업무를 경감시켜주는 배려가 있어야 소정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소수의 핵심 사안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 분할(Segmentation)이라고 부르는 이 같은 전략이 델 컴퓨터가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든 핵심 요소였다.
  델은 컴팩을 인수한 HP에 최근 일등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 여파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마이클 델은 다시 현업으로 복귀했다. 영원한 승자는 있을 수 없다. 한때 전통적인 사업모델을 완전히 바꾼 룰 브레이커(Rule Breaker)로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던 마이클 델이 자신이 만들어낸 룰을 깨고 또다시 새로운 룰을 만들어낼지 관심을...

< CEO의 리더십 탐구 >


델컴퓨터 색상ㆍ디자인ㆍ판매 다 바꿨다

델컴퓨터 색상ㆍ디자인ㆍ판매 다 바꿨다

인도서 신제품 발표한 마이클 델 회장
MP3등 휴대용기기 사업 관심, LG디스플레이와는 계속 협력

"델, 많이 좋아졌습니다. 1분기(2008년 2~4월) 실적만 봐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출하 대수가 22% 증가했어요. 2분기 실적은 더 좋게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제가 델에 복귀한 지 1년6개월가량 됐는데 그동안의 구조조정과 혁신이 성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3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마이클 델 델컴퓨터 회장을 만났다. 델컴퓨터가 기업용 노트북PC인 래티튜드 신제품을 세계 최초로 인도에서 처음 공개하는 행사장에서다.

지난해 델 회장 복귀 이후 델컴퓨터는 신흥시장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1분기 델컴퓨터의 브릭스(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 지역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58%, 출하 대수는 73% 증가했다. 브릭스 국가의 약진 덕분에 미국 외에서의 매출이 처음으로 미국 내 매출을 옷돌았다.

델 회장은 이날 매일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라는 용어를 자주 언급했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쉽게 접속할 수 있게 되면서 PC를 들고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PC는 가벼워져야 하고 배터리도 오래 가고 보안 기능도 충실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델 회장은 1984년 델컴퓨터를 설립하고, 이를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로 이끌었다. 지난 2004년 델 회장이 케빈 롤린스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내주고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자 델컴퓨터는 거듭되는 실적 부진을 맞는다.

급기야 2006년에는 세계 1위 PC업체라는 자부심도 경쟁사인 HP에 빼앗겼다. 위기가 고조되던 지난해 2월 델은 CEO에 복귀했다.

델 회장 복귀 이후 델컴퓨터는 세 가지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우선 검은색 사각형의 통일된 디자인만 고집하던 델이 화려한 색에 유연한 디자인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직접판매만 고집하던 판매 방식도 변화했다. 간접판매(매장을 통한 판매)를 추가한 것이다. 또 PC에서 MP3플레이어와 휴대용 기기 등으로의 신사업 진출도 검토하고 나섰다.

델 회장은 "기업 고객에게는 직접판매가 확실한 경쟁력을 갖지만 개인 고객에게는 물건을 직접 보고 고르게 하는 간접판매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간접판매를 추가한 것이지, 델의 원천적 경쟁력인 직접판매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에서도 델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델이 출시한 래티튜드 노트북PC는 사각형의 검은색 외형을 버리고 유선형 디자인에 빨강 파랑 분홍 메탈 등 4가지의 색상을 입혔다. 데스크톱PC에서도 최근 출시된 스튜디오 하이브리드 데스크톱PC는 7가지 컬러풀한 색상을 채택하고 크기도 기존 델 PC의 절반에 불과하다.

델 회장은 "사각형에 검은색 델컴퓨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만큼 디자인을 진화시켰다"며 "HP에 빼앗긴 세계 1위 PC라는 델의 자부심을 이른 시일 안에 되찾겠다"고 설명했다.

델컴퓨터는 최근 MP3플레이어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오는 9월께 애플 아이팟에 필적하는 기기를 만들고 아이튠스에 버금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휴대전화 사업에 진출한다는 소문도 솔솔 나오고 있다.

델 회장은 "다양한 사업을 검토하고 있고 거기에는 휴대전화나 소형 PC와 같은 MID(모바일 인터넷 디바이스)가 포함돼 있다"며 "아직 검토 단계며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델 회장은 한국 시장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삼성 LG 등 국내 업체들이 너무 강해 쉽게 뚫기는 어렵지만 얼리 어답터들이 많기 때문에 IT 테스트베드가 된다는 설명이다.

최근 국내에 돌고 있는 필립스가 보유한 LG디스플레이의 지분 인수에 대해 마이클 델 회장은 즉답을 꺼렸다.

그는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삼성전자 등 한국 업체와는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필립스가 보유한 LG디스플레이 지분 인수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밝혔다.

[뉴델리 = 이승훈 기자]

Tag : CEO, 경영, 델컴퓨터, 리더십, 마이클 델


앤드류 그로브 - 인텔 전 회장
리더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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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만족을 낳고 자기만족은 실패를 낳는다. 오직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Sucess breeds
complacency. Complacency breeds failure. Only the Paranoid survive).
’ 이것은 인텔 전 회장 앤드류 그로브(Andrew S. Grove)의 경영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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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그로브는 어린 시절 홀로코스트를 겪은 헝가리 태생 유대인이다. 1956년 스무 살의 나이에 소련군 압제를 피해 단돈 20달러를 손에 쥐고 단신으로 미국 망명을 선택,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온갖 고생 끝
에 형설지공(螢雪之功)으로 뉴욕시립대학을 거쳐 캘리포니아대학에서 1963년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3년 전 미국에 올 때만 해도 영어로 ‘수평’과 ‘수직’을 구별하지 못하던 헝가리 난민 청년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영어사전을 옆에 놓고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이해하기도 어려운 전문용어로 가득 찬 엔지니어링 학과에서 수석을 했다”고 썼다.
 
그 후 페어차일드사를 거쳐 1968년 창립 때부터 인텔에 참여한 앤드류 그로브는 제2차 석유파동으로
경영위기가 닥친 1979년 대표이사를 맡은 이래 인텔을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만들었고, 1998년 크레그 바렛에게 경영권을 인계했다. 이후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던 앤드류 그로브는 현업에서 물러난 지금도 ‘존경받는 기업인’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
  앤드류 그로브는 세계 반도체 산업 발전에 힘쓴 사람들에게 주는 상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안게 됐고, 하버드대학 경영사학자 리처드 테들로는 앤드류 그로브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경영학도이자 경영학 교수”라고 극찬한 바 있다.
  한 사람의 리더가 조직의 운명을 바꾼다. 앤드류 그로브는 과감한 결단과 독특한 경영수완으로 인텔을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장기간 발전할 수 있는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1980년대 중반, 도시바 등 일본 경쟁사들의 거센 도전으로 인텔은 이익이 전년 2억 달러에서 2백만 달러로 곤두박질치는 위기를 맞았다. 콧대 높은 임직원들은 일본 기업에 뒤졌다는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당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인텔은 메모리(D램)와 동일했다. D램은 사실상 인텔이 개발해서 압도적 시장지위를 가진 1등 기업이 되었다. D램을 버린다는 것을 동료들과 토론하는 것도 금기시될 정도였다. 그러나 앤드류 그로브는 회사 비즈니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단순 저장장치에서 손을 떼고 ‘인텔, 마이크로 컴퓨터 회사’라는 비전을 내걸고, 컴퓨터의 두뇌라 불리는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올인했다.
앤드류는 회사와는 전혀 무관한 제3자가 새로운 경영자적 관점에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심정으로 핵심 사업의 자원을 빼내 미래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입했다.  사업 방향을 바꾸는 것은 운명을 거는 일이다. 기존 8개의 D램 공장 중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마이크로 프로세서 생산에 투입했다. 초기에는 엄청난 적자가 났고 직장동료 7천2백 명을 떠나보내고 생산공장을 두 곳이나 폐쇄하는 아픔이 뒤따랐으나, 인텔은 1992년 마이크로프로세스 분야의 최강자로 뛰어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앤드류의 혜안은 그후에도 계속 빛을 발한다. 그는 브랜드가 기업의 최고 자산이 될 것으로 판단해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앤드류는 1991년 봄,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1억 달러를 투입해 ‘인텔 인사이드’ 개발에 착수한다. “첨단산업에서, 그것도 부품 브랜드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라며 “차라리 연구개발에 투자하라”는 권유와 설득과 반발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앤드류는 흔들리지 않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브랜드 덕분에 인텔은 컴퓨터 제조회사 사이에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마이크로칩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부착한 컴퓨터는 가격이 10%나 높게 책정되게 만들었다. 인텔은 나이키나 코카콜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 소비자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회사가 됐다.
  앤드류의 결단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1994년 마이크로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한 사업이 대성공을 거둬 연간 성장률이 30%에 다다르던 시기였다. 인텔이 이미지 제고를 위해 대대적인 광고를 집행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어느 수학교수가 펜티엄 칩의 계산 기능에 문제가 있다면서 인터넷 포럼에 펜티엄의 버그라는 한 줄의 글을 올린 사건이 발생했다. 초기에는 90억 번에 한 번씩 발생하는 오류, 즉 한 명의 사용자가 2만7천 년에 한 번 정도 겪는 오류로 쉽게 넘겼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비난과 언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앤드류 그로브는 무조건 보상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순간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비용으로 5억 달러를 과감하게 지불한 것이다. 앤드류 그로브는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경영자였다. 그는 “경영을 하는 모든 사람은 실수를 인정하면 어렵게 얻어낸 존경심을 잃지 않을까 염려한다. 하지만 실제로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강함과 성숙함, 공명정대함의 표시이다”라며 실수에 솔직한 경영자의 모습을 강조한다.

항상 경계하는 자만이 경쟁서 이긴다

 앤드류는 “기업에는 크고 작은 바람이 존재하고
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많지만 어떤 것은 태풍으로 돌변하며 기존의 비즈니스 구도를 송두리째 뒤엎어놓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전략적 변곡점이라 이름 붙였다. 기업환경, 특히 기술이 10의 배수로 변화할 때 전략적 변곡점을 접하게 되는데, 이에 잘 대처한 기업은 생존해 번성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생존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전략적 변곡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통찰력, 그리고 그 결정이 가져올 위험을 무릅쓰고 결단하는 힘이 기업을 살린다.
  앤드류 그로브는 변곡점을 잘 넘기려면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변화를 예측할 수 없었던 1985~1986년의 경험을 되풀이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공포가 인텔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때문에 항상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경계하고 걱정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의 좌우명이 됐다.
앤드류는 “정신착란증에 걸린 것처럼 초긴장 상태로 항상 경계하는 자만이 경쟁에서 이긴다”라고 주장한다. 편집광은 ‘계속 의심하는 사람’이다. 최고경영자는 최악의 경우를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앤드류 그로브는 벤처기업의 속성, 즉 자율과 창의성을 유지하기 위해 권위주의와 관료주의를 철저히 배격했지만, 그와 동시에 실리콘밸리의 자유분방한 문화와는 다른 엄격한 규율을 조직에 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시장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있도록 조직 내 어느 누구든 아무리 나쁜 뉴스라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전달하고 토의할 수 있는 건설적 대립(Constructive confrontation) 문화를 만들었다. 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그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직원들에 대한 교육·훈련이었다. 조직의 리더는 눈앞의 문제해결이 아닌 체계적인 직원훈련을 통해 기업의 앞날을 밝히는 등불이 돼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는 지나칠 만큼 규율과 완벽함을 추구했다. 직원들의 출·퇴근시간에서부터 회사의 청소상태까지 꼼꼼히 따지고 챙겨 스크루지라는 별명과 함께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그의 완벽주의는 흐트러지기 쉬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고, 그 결과 인텔은 실리콘밸리에서 보기 드물게 강한 조직력을 자랑하게 됐다.  엄격하기만 한 그가 실리콘밸리에서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더욱 더 엄격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인텔 본사 5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평범하기로 소문이 날 정도다. 칸막이만 있을 뿐 명패도 없다. 면적은 4.75평. 일반 직원과 같은 크기다. 그는 CEO가 된 후에도 직접 차를 몰았다. 그는 의료진이 놀랄 정도로 강인한 의지력을 바탕으로 전립선암을 극복, 인간승리의 감동 드라마를 안겨주기도 했다.
  앤드류 그로브는 벤처기업의 속성, 즉 자율과 창의성을 유지하기 위해 권위주의와 관료주의를 철저히 배격했지만, 그와 동시에 실리콘밸리의 자유분방한 문화와는 다른 엄격한 규율을 조직에 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시장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있도록 조직 내 어느 누구든 아무리 나쁜 뉴스라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전달하고 토의할 수 있는 건설적 대립(Constructive Confrontation)문화를 만들었다.

< CEO 리더십 탐구 >
Tag : CEO, 경영, 리더십, 앤드류 그로브, 인텔


하워드 슐츠 - 스타벅스 회장
영혼의 리더십으로 신화 재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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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결승점에 혼자 도달하는 것은 공허하다. 최고의 성공은 승리자들에게 둘러싸여 그곳에 함께 도달하는 것이다. 한 회사가 어떻게 구성원의 마음과 영혼을 살찌우면서도 동시에 돈을 버는가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를 우리는 스타벅스와 하워드 슐츠 회장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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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갈아 금으로 만드는 기업, 천년의 커피
역사를 뒤집는 성공신화, 지난 10년간 주가 1,500% 상승, 한 달 평균 18회 매장을 방문하는 수천만 명의 충성고객을 가진 세계 최대 커피 체인점, 이는 모두 스타벅스에 대한 수식어 이다.

 스타벅스의 성공신화는 뉴욕 빈민가 태생인 하
워드 슐츠에 의해 이룩됐다. 195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3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하워드 슐츠에게 어릴 적 가난은 곧 친구였다. 막일을 하던 아버지는 폐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성공한 위인들의 삶을 들려주며 그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줬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그는 나중에 높은 사람이 되면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리라 다짐하곤 했다. 이런 꿈과 열정이 그를 빈민가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는 노먼 미시간대에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입학함으로써 브룩클린을 벗어난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부사장으로 일하던 하워드 슐츠는 1982년 ‘원두커피’와의 운명적 만남을 계기로 뉴욕의 풍요를 버리고 스타벅스에 합류한다. 3년 후 ‘사람들이 커피 한잔과 더불어 편하게 토론하고 재즈를 들으며 쉴 수 있는 오아시스를 창조하겠다’는 낭만적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스타벅스를 박차고 나와 ‘일 지오날레’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하워드 슐츠는 2백42번에 이른 투자설명회 끝에 몇몇 투자가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1987년 ‘구멍가게’ 수준에 불과했던 모기업 스타벅스를 인수해 전 세계 43개국에 걸쳐 1만 5천여 개 점포를 가진 ‘커피를 갈아 금으로 만든 세계 최고의 커피 왕국’으로 키운다.
 
직원은 종업원 아닌 ‘파트너’
기업은 단지 이윤추구만이 아닌 진정한 가치에 의해 경영될 때 열정과 개성을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사업 초기 하워드 슐츠는 핵심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주위 사람들에게 불어넣는 데 매진했다.
“처음 내가 종업원들과 회사 발전전략을 논의할 때 약속한 것은 성장이나 이익을 뛰어넘는 ‘위대한 회사(Great Company)’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인간 정신을 존중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게 우리가 말하는 위대한 회사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불행하게 사는 사람을 돌보자는 취지에서 우리는 스타벅스를 가꿔나갔다. 우리가 벌어들인 수익은 함께 나눈다.” 스타벅스에서 품질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다. 스타벅스는 세계 최고의 원두만을 사용한다. 추출된 커피는 1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폐기한다. 그러나 하워드 슐츠에게 스타벅스는 커피를 판매하는 사업이 아니었다. 그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창출하는 편안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공간과 문화, 그리고 경험을 파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수천만 명에 이르는 고객들은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5~10분간의 편안한 휴식, 최고급 원두커피, 사회적 교류라는 경험을 사기 위해 스타벅스를 방문한다. 현대인은 일터와 가정의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3의 장소에 열광했고, 그렇게 열광적으로 만족한 고객들이 입에서 입으로 스타벅스를 알렸다. 스타벅스는 단 한 번의 브랜드 광고도 없이 세계 최고 브랜드를 구축하게 됐다.
스타벅스의 성공신화는 커피를 서빙하는 사람에 투자함으로써 더욱더 빛을 발했다. 슐츠는 직원들에게 열정과 동기를 부여하면 스스로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워드 슐츠 회장은 “우리 회사의 최우선 순위는 직원들이다. 그 다음 순위는 고객만족이다. 종업원이 행복하면 고객도 행복하다. 직원이 고객을 잘 대하면 고객은 다시 찾아올 것이고, 바
로 이것이 사업 수익의 진정한 원천이다”라고 인간 중심 경영철학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하워드 슐츠는 가장 보람 있는 경험 중 하나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회사의 성장과 함께 커나가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라고 수시로 강조한다. 그는 일선 직원들을 의사결정에 참여시키고, 또 그러한 의사결정이 이뤄진 배경을 설명해주고 자유롭게 회사의 정책이나 전략방향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매분기마다 공개포럼을 열어 회
사의 경영성과를 설명하고 계획, 결정사항, 전략, 기타 관심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미팅을 10년 이상 계속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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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슐츠는 고객보다 먼저 직원을 챙겨줬고, 파트타임을 비
롯한 모든 직원들에게 빈 스톡(Bean Stock, 원두주식)이라는 스톡옵션과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직원들의 열정적인 헌신을 이끌어냈다. 스타벅스에서는 종업원을 직원(employee)
이 아닌 파트너(partner)라 부른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스타벅스는 커피 비즈니스가 아니라 ‘피플 비즈니스(People Business)’ 기업으로 불리게 됐다.
 
살해된 직원 위해 가족부양비 쾌척
그가 종업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케 하는 일화가 있다. 1990년대 중반, 점포 관리자가 강도에게 처참하게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은 슐츠 회장은 그날 밤 바로 전세 비행기를 타고 텍사스로 갔다. 그는 현장에 머무르면서 가족들과 종업원을 위로했고 죽은 관리자의 가족을 위해 기금을 조성했다. 그리고 텍사스 점포를 판 돈을 사망자의 가족 부양과 아이들 교육을 위해 헌납했다. 이러한 최고경영자의 모습이 ‘스타벅스 로열티’를 끌어냈다. 직원들의 로열티는 고객들의 로열티로 이어졌다.

  그동안 승승장구해오던 스타벅스는 지난 1년간 주가가 절반으로 하락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주택경기 위축과 고유가로 인한 소비감소 추세 속에서 던킨도너츠,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 체인들까지 카푸치노, 라테 등 새 메뉴를 추가하며 커피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워드 슐츠 회장이 7년 만에 구원투수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이는 지난해 경영일선에 복귀한 마이클 델 델컴퓨터 창업회장 사례와 함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두 경영자가 이미 구 모델이 돼버린 사업 모델을 과감히 탈피하고 또 하나의 혁신을 일궈냄으로써 옛날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연출될 것으로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다.
하워드 슐츠는 “최고경영자로 복귀하게 돼 대단히 기쁘다. 스타벅스와 스타벅스의 헌신적인 파트너인 직원들을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더 큰 성공으로 이끌게 돼 설렘을 감출 수 없다”며 일단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그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스타벅스를 특별하게 만든 직원들과의 탄탄한 신뢰, 고객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 윤리적인 소신과 세계 최고의 커피를 로스팅한다는 자부심, 리스크에 과감히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 혁신과 창조적 정신, 기업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스타벅스가 전 세계 고객, 그리고 직원들의 마음과 영혼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고수해야만 경쟁력 회복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하워드 슐츠는 어려운 경영환경에 직면해서도 전 세계 매장을 4만 개까지 확장해 맥도날드를 능가하겠다는 공격적 비전을 강조한다.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제 덕분에 부자가 됐다고 하는데 저야말로 여러분 덕분에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감사해야 할 사람은 여러분이 아니고 바로 접니다”라고 겸손해하는 하워드 슐츠가 열정과 헌신, 몰입을 다하는 파트너
(직원)들과 함께 난국을 타개하고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영탁의 'CEO의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리더십,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


제프리 이멜트의 10가지 리더십 원칙
GE 회장 제프리 이멜트의 10가지 리더십 원칙


1. Personal Responsibility.  - 자신의 책임을 다하라


"Enron and 9/11 marked the end of an era of individual freedom and the beginning of personal responsibility. You lead today by building teams and placing others first. It's not about you." 
(개인의 자유보다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자신보다는 조직을 만들고 타인을 우선하라.)


2. Simplify Constantly. -  끊임없이 단순화하라

"I always use Jack [Welch] as my example here. Every leader needs to clearly explain the top three things the organization is working on. If you can't, then you're not leading well."
(어떤 조직에서든 리더는 자기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난 이 부문에서 항상 잭 웰치처럼 하려고 노력해 왔다.)

3. Understand Breadth, Depth, and Context. - 주변환경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라

"The most important thing I've learned since becoming CEO is context. It's how your company fits in with the world and how you respond to it." (리더는 자신의 회사가 세상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지 늘 확인해야 한다.)

4. The importance of alignment and time management. - 시간관리가 중요하다

"There is no real magic to being a good leader. But at the end of every week, you have to spend your time around the things that are really important: setting priorities, measuring outcomes, and rewarding them."  (리더는 매주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결과를 측정하고, 결과를 평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5. Leaders learn constantly and also have to learn how to teach.  - 끊임없이 배우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교수법을 익혀라

"A leader's primary role is to teach. People who work with you don't have to agree with you, but they have to feel you're willing to share what you've learned."  (리더가 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일이다. 조직원의 의견과 리더이 의견이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리더가 배운 것을 조직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해시키고 따라올 수 있게 해야 한다.)

6. Stay true to your own style. - 자기 스타일을 가져라

"Leadership is an intense journey into yourself. You can use your own style to get anything done. It's about being self-aware. Every morning, I look in the mirror and say, 'I could have done three things better yesterday.' "  (리더십이란 자신의 내면을 향한 강도 높은 여행이다. 리더는 자신을 잘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7. Manage by setting boundaries with freedom in the middle. -  조직에 유연한 리더십 원칙을 제시하라


"The boundaries are commitment, passion, trust, and teamwork. Within those guidelines, there's plenty of freedom. But no one can cross those four boundaries." (리더는 조직원에게 리더십 원칙을 제시하라. 그 원칙은 유연함과 엄격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한다.)

8. Stay disciplined and detailed. - 리더는 늘 배우는 자세로 조직의 사정을 꿰고 있어야 한다


"Good leaders are never afraid to intervene personally on things that are important. Michael Dell can tell you how many computers were shipped from Singapore yesterday."  (뛰어난 리더는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직접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델 컴퓨터의 회장 마이클 델은 싱가포르에서 어제 선적된 컴퓨터 대수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 일에 정통하다.)

9. Leave a few things unsaid.  - 말하지 않는 것도 몇 개 남겨 두라

"I may know an answer, but I'll often let the team find its own way. Sometimes, being an active listener is much more effective than ending a meeting with me enumerating 17 actions."  (해답을 알고 있더라도 리더는 가끔씩 조직원들이 스스로 답을 찾게 해야 한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것이 리더가 열변을 토하며 회의를 끝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10. Like people. - 사람을 좋아하라

"Today, it's employment at will. Nobody's here who doesn't want to be here. So it's critical to understand people, to always be fair, and to want the best in them. And when it doesn't work, they need to know it's not personal." (이 시대의 직장인은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다. 리더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정하게 대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Tag : 경영, 리더십, 제프리 이멜트


워렌 버핏 -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불변의 원칙 고수하는 오마하의 현자

대부분 사람들은 워렌 버핏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투자의 귀재’로서의 모습을 떠올린다. 주식 시장에서는 그 특성상 최첨단 과학적 투자기법을 이용하는 투자 전문가들도 엄청난 손실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떤 비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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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전재산의 85%인 370억 달러를 자선기금으로 출연해 세상을 놀라게 한 76세의 노신사,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의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에게는 월가의 양심, 황금손, 오마하의 현인, 살아있는 투자의 전설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코카콜라(8%), 질레트(9%), 아메리칸 익스프레스(11%)와 같은 초일류 다국적 기업의 최대 주주 버크셔 해서웨이는 주당 1억원을 넘나드는 황제주로 꼽힌다. 워렌 버핏은 1965년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 후 수익률이 S&P 500 지수 상승률 이하로 떨어진 적이 단 3번에 불과 할 정도로 놀라운 성적을 보였다. 지난 40여년 동안 그가 투자한 회사들은 연평균 성장률 20%를 자랑한다.

매년 투자자들은 워렌 버핏의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열광한다. 미국 중부의 한적한 중소 도시 오마하에서 열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는 매년 전세계에서 모여든 주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난 5월 진행된 2007 주주총회에도 어김없이 세계 각지에서 3만명이 넘는 주주들이 모여들어 일대 장관을 연출했다.

1956년 단돈 100달러로 투자를 시작한 워렌 버핏이 부침이 심한 투자세계에서 오랜 세월 왕좌 자리를 지켜 온 데는 가치 투자라는 투자 원칙과 더불어 탁월한 리더십이라는 버팀목이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워렌 버핏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투자의 귀재’로서 그의 모습을 떠 올린다. 주식시장에서는 그 특성상 최첨단과 학적 투자 기법을 이용하는 투자 전문가들도 엄청난 손실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 은 그에게 어떤 비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 나 그의 투자 전략이나 경영 철학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의 투자 원칙은 ‘아는 것에 투자한다’는 단순한 진리이며, 경영 철학은 10년을 보유하고 싶은 건실한 기업을 고르는 것이다. 어쩌면 “10년 이상 소유하고 싶지 않은 주식은 단 10 분동안도 소유할 가치가 없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모든 투자 비법이 있는지 모른다. 워렌 버핏은 “우리는 공연히 투자자들과 기업가들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정치, 경제적 전망에 대해서는 계속 무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식의 수익성을 따질 때 시장의 주변 상황 에 대해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의 투자 철학은 “주식 시장은 단기적으로 변덕과 두려움, 그리고 탐욕이 이끄는 대로 가치를 평가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는 내재 가치에 따라 평가된다”고 주장한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그는 가치 있는 주식을 발굴해 사들이고 이를 10~20년이 지나도록 오랫동안 보유한다.  코카콜라와 질레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것’이며 경영진의 자질도 높기 때문에 버핏 은 이 두 회사를 버크셔 해서웨이의 영구 보유 종목으로 삼았다. 그래서 추락 사태에도 초조해 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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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는 원칙, 정직, 신뢰 갖춰야

최근 들어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따라하고 있는 가치투자에는 ‘원칙중심의 리더십’이 숨어있다. 올바른 인격과 성품을 기초로 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정해진 원칙을 고수하는데서 부하 직원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것이 바로 원칙 중심의 리더십이다. 소문과 유행, 투기성 매매가 성행하는 월스트리트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워렌 버핏은 실질적인 것에만 투자 한다는 기본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1990년 대 말 기술주가 한창 인기를 끌 때 시스코시넷 주에 투자하지 않아 해서웨이 주주들의 원성을 샀지만 결국 2002년 부터 시작된 기술주들의 폭락 행진으로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폴 케네디는 자신의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21세기 기업가는 성직자에 준하는 고도의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 경영자의 도덕성 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워렌 버핏 리더십의 두 번째 근간은 엄격한 도덕성 에있다. 거칠고 혼탁한 투자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워렌 버핏은 정직성의 결여가 결국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구두선이 아 닌실천으로 보여줌으로써 지행합일()에서 우러나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는 아직도 1958년 3만1500달러를 주고 산 고향 오마하의 시골집에서 살고 있다. 워렌 버핏은 20달러짜리 스테이크나 햄버거 가게를 즐겨 찾는다. 그는 오래된 중고 차를 직접 몰고 다니고, 12달러짜리 이발소를 가는 등 세계에서 두번째 부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검소함을 실천한다.

그는 돈보다 명성을 중시한다. 또한 자기 스스로 도덕성과 원칙을 준수함과 동시에 이를 피투자 회사 사장과 회사 임직원들에게 항상 요구하며 윤리 의식으로 똘똘 뭉친 조직으로 만들어간다. 그는 수시로 버크셔 해서웨이 간부들에게 ‘모두가 비윤리적 행위를 하더라도 넌 하지마’라고 비윤리적 행위를 경계할 것을 촉구하곤 한다. 그는 기업실적이 좋다고 해서 부도덕한 기업 경영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경영에서 가장 위험한 말은 ‘누구나 다 하니까’라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돈을 많이 잃어도 괜찮지만 극히 작은 평판이라도 잃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사업상 하는 모든 일이 뉴욕 타임스 1면에 기사로 나와도 떳떳할 수 있게 하자” 고 수시로 직원들을 독려한다. 자칫하면 비리 에 빠지기 쉬운 투자 업계에서 이는 경쟁력의 초석이 되고 있다.

워렌 버핏은, 성공적 경영자가 되는 첫째요소는 품성과 이에 바탕한 평판과 신뢰라고 말 한다. 워렌 버핏은 직원을 채용할 때 성실(integrity)을 지능(intelligence)이나 에너지(energy)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한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채용하면 그 사람이 결국 회사를 망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버핏으로부터 배우는 세번째 리더십 교훈은 동료 직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임파워먼트이다. 가치 있는 주식을 발굴해 사들이고, 이를 오랫동안 보유해 이익을 올리는 버핏.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렇게 성공적인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걸까? 그것은 바로 CEO를 기준으로 투자하기 때문이다. 워렌 버핏은 사람에게 먼저 투자하고 그 다음에서야 기업에 투자한다. 버핏이 기업 세계에서 거둔 성공은 상당 부분 경영자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능력과 화려한 경력, 또는 빛나는 업적을 대신할 만한 인품을 평가하는 능력에서 비롯 된 것이다.

워렌 버핏은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자가 그가 요구하는 아주 높은 수준에 못 미치면, 그 기업이 아무리 매력이 있다 하더라도 투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투자하면 완전히 믿고 맡긴다. CEO 위의 CEO, 워렌 버핏은 피투자 회사 사장에게 경영 일체를 위임하고 본인은 새로운 전략 구상 등 보다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고 있다.

워렌 버핏은 “나는 진정으로 두 가지 일만 한다. 하나는 우리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경영자들을 끌어들이고 잡아두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일은 자본의 분배다. 나는 이 사업에서 과중한 모든 업무를 하부 경영진에게 위임했다. 퇴직 시점까지 권한을 위임할 것이다. 버크셔에는 종업원들이 3만3천명이나 있지만 단지 12명만 본사에서 일한다”고 임파워먼트를 강조한다.

피투자회사 중 하나인 조던 퍼니처 CEO 앨리엇은 “버핏은 사람을 움직이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주고 내가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경영에서 대단한 능력이다. 나를 위해 일해 주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은 훌륭하고 특별하며, 중요하다고 느끼게 하는 능력 말이다. 그는 우리 각자에게 그런 느낌을 심어 준다”고 말한다. 워렌 버핏에게 투자받는 것이 회사와 그 회사를 책임지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일종의 영광이라고 생각함을 엿볼 수 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 80세를 바라보는 오마하의 현자, 워렌 버핏이 현역 생활을 끝마칠 때까지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고, 자신 보다 훌륭한 후계자를 선정해 제대로 키워내고, 또한 약속대로 재산의 99%를 자신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모두에게 존경받는 불멸의 리더로 남기를 바란다.
Tag : CEO, 경영, 리더십, 워렌 버핏


스티브 잡스 - 애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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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개발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한번도 경험하기 힘든 벼락 성공과 연이은 처참한 실패를 겪으며, 조금 씩 참다운 리더로 성장해가는 리더의 모습을 스티브 잡스(Steve Jobs) 애플 회장에게서 살펴볼 수 있다.
 
2006년 BCG가 전세계 1500개 글로벌 기업의 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혁신적 기업으로는 애플이, 가장 혁신적 기업가로는 스티브 잡스가 2년 연속 선정됐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찬사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잭 웰치 회장을 넘어 창조와 혁신이 새로운 아이콘이 된 21세기 최고의 기업가로 스티브 잡스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과 창조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MP3 플레이어 ‘아이팟’과 온라인 음악 서비스 ‘아이튠스’를 통해 세계인의 생활양식과 문화 자체를 바꾼 가히 혁명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같은 찬란한 성공의 이면에는 태어나 자마자 미혼모 손을 떠나 양부모 슬하에서 자라게 되는 불우한 어린 시절, 1학기만에 중퇴하는 대학 생활,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에 의해 쫓겨남, 췌장암 사망선고에 이르는 실패와 역경을 헤쳐 나가는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인생 역전이 숨어있다.
스티브 잡스는 1976년 21살의 나이에 대학 중퇴 후 차를 처분한 1300달러를 종자돈 삼아 차고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했다. 그는 창업 1년만인 1977년 개발한 세계 최초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 II의 성공으로 정보화 시대 개막을알렸다. 스티브잡스는 25살에 2억달러 넘는 돈을 소유, 가장 어린 나이에 포브스지 선정 400대 거물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애플은 10년 후 4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20억달러 매출의 회사로 성장했지만, 이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성공이 었다. 스티브 잡스는 얼마 가지 않아 처절한 실패를 맛본다.
 
오만과 독선의 CEO
당시 스티브 잡스는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사람들로부터 독재자라는 비난을 들었다. 제품 이름에서 포장박스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했다. 거친 언사와 심한 감정의 기복, 합리적 의사결정을 무시하는 독선과 아집으로 주위의 많은 인재들이 떠나게 됐다. 그는 절대권력자였다. 목표 달성에만 관심이 있었지 인간관계는 안중에도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은 즉흥적으로 해고했다. 직원들이 구내식당에 불만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그 자리에서 구내식당 종업원들을 모두 해고한 일도 있었 다. 애플Ⅱ가 출시된지 4년 뒤인 1981년 컴퓨터의 대명사 IBM이 개인용 컴퓨터에 눈을 돌려 PC를 출시했을 때도 “IBM을 환영합니다”라는 전면광고를 낼 정도로 기고만장했다.
스티브 잡스는 과도한 기술 우월주의에 빠져 있었다. 애플이 1984년 새롭게 개발한 매킨토시에는 오늘날 PC에서 사용하고 있는 중요한 기술 대부분이 포함 돼 있었다. 키보드 대신 마우스를 이용하는 것, 한 화면에 여러개의 창을 띄울 수 있는 윈도우(Windows),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등이 모두 애플의 기술에서 나왔다. 당시로선 획기적 기술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초기에 이런 기술들을 공개하지 않고 자신들의 애플 컴퓨터에서만 쓰기를 고집하면서 제품이 널리 보급되는 것을 막았다. 결국 뛰어난 기술에도 불구하고 1984년 브랜드와 마케팅 능력, 특히 MS-DOS라는 오픈 운영체제로 무장한 IBM에 선두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 때의 결정은 비즈니스 역사상 최악의 의사결정으로 기록되고 있다.


 

인생 최고의 선물 ‘해고’
이와 같은 독선과 오만으로 무장돼(?) 고객을 무시하고 기술만을 중시하던 스티브 잡스는 지속적인 내리막 길을 걷게 되고 결국 1986년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자신이 직접 초빙해 온 펩시콜라 회장 출신 존스컬리에 의해 졸지에 축출 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떠나 다시 만든 넥스트에서도 또 다시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실패와 역경은 스티브 잡스의 ‘세상을 바꾸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실패와 역경을 오히려 행운으로 생각했다. 대학 중퇴를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결정중 하나로, 애플에서 해고된 것을 인생 최고의 일이라 공언 했다. 역경은 그를 리더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하늘의 선물이었다.
1986년 스티브 잡스는 우연한 기회에 루카스 필름의 3D애니메이션 파트였던 픽사 (Pixar)를 인수해, 1995년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를 개봉해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스티브 잡스는 주식공개 를 통해 10억 달러를 벌어들임으로써 다시 한 번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한편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인정 받았던 애플은 1995년에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한 때 20억달러 적자에 허덕이며 파산위기에 처했다.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판매실적은 절망적이었다. 핵심인재는 떠나고 남아있는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였다. 3명의 전문 CEO를 영입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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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마지막 수단으로 스티브 잡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실패의 상처를 안고 떠났던 그는 12년만인 1997년 연봉 1달러 조건으로 침몰 직전의 애플로 돌아왔다. 스티브 잡스는 복귀 1년만에 기존 컴퓨터업계의 고정관념을 깨고 반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로 속이 보이는, 누드형태의 PC 모니터 일체형 아이맥(iMac)을 출시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1997년에 1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던 애플사는 그의 복귀 1년만에 4억 달러 가까운 흑자로 돌아섰다. 스티브 잡스 복귀 후 2년 반이 지나 애플의 총자본은 20억 달러 미만에서 160억 달러로 8배 증가했다. 스티브 잡스는 드디어 2001년에 MP3 아이팟(iPod) 신화를 창출하며 역사상 가장 화려한 부활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연속되는 실패와 역경은 그를 부드러운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변화시켰다. 실패의 상처를 안고 떠났던 그는 감성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안고 애플을 회생시킬 구원투수로 돌아왔다. 개인 플레이에 능하던 잡스는 이제 팀 스포츠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는 모든 혁신의 중심을 디자인에 두었다. 전문가에게 디자인 개발의 전폭적인 재량권을 부여했다.
또한 그는 기술을 이용해 고객을 감동시키 는 방법을 터득했다. 경쟁사들이 복잡한 기능 추가에 매달릴때 아이팟은 크기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녹음이나 라디오 기능을 모두 제거 했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 우월주의의 폐쇄 정책이 실패를 좌초했다는 반성으로 디즈니, MS, IBM, 펩시, 나이키, 소니 유니버설 등 관련 회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음악 다운로드 소프트인 아이튠스도 개방형으로 전환해 무료로 배포함으로써 사용자 층을 대폭 확대했다. 음악은 곡당 99센트로 가격을 낮춰 2006년 한해 10억곡으로 1조원의 매출을 올림으로써 음악 다운로드 시장의 70%를 장악했다. 세계시장 50%를 점유하고 있는 아이팟은 발매 5년 만에 5천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가전제품 사상 가장 성공한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이팟 출시 후 연평균 성장률 30%를 웃도는 애플은 미국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과 수익률을 자랑하는 초일류기업이 됐다. 애플은 순식간에 MP3 플레이어와 음반시장에서 리더로 부상했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1천여 곡의 음악을 직접 저장해 들고 다니면서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음악세계라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
스티브 잡스는 비전, 열정, 그리고 뭐가 달라도 남과 다르게 하겠다는 창조적 카리스마 로 쉰 살의 나이에 컴퓨터, 영화, 음악 3가지 산업에서 아이콘이 됐다.
 
지천명의 쉰 고개를 넘은 스티브 잡스는 아직도 초심을 잃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리더십은 개인의 창조적 카리스마에 의존하지 않는다. 진정한 리더는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지속적으로 승리를 창출해 낼 수 있는 탁월한 조직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그런 점에서 스티브 잡스 리더십은 아직 미완성, 진행형이다.
 
 출처 :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Mac, 경영, 리더십, 스티브잡스


월트디즈니 - 꿈과 비전 나르는 꿀벌형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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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사람은 삶을 현재의 모습으로만 보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 친구는 사는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친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꿈이란 어떻게 꾸는 것인지, 더 멋진 세상은 어떻게 상상해야 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지. 그 친구 이름이 바로 월트 디즈니야.” 짐 스토벌의 《최고의 유산 상속받기》
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계 최대 규모 테마파크인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는 월트 디즈니(1901~1966) 사후 5년 만인 1971년 문을 열었다. 개장식에서 한 직원이 미망인 릴리 디즈니 여사에게 말했다. “디즈니 씨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디즈니 여사는 “그는 이 모습을 벌써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디즈니랜드가 건립된 것이지요”라고 답했다. 
월트 디즈니, 그는 죽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이미 디즈니월드가 하나의 그림으로 자리 잡고있었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공간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월트 디즈니의 비전이다.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월드를 구상하던 그 순간부터 이미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은 이제야 그것을 보고 있지만, 비전을 품은 그는 늘 마음의 눈으로 생생히 그 그림을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리더로서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미리 보았기 때문에 지금의 디즈니 왕국이 별다른 폭풍우를 만나지 않고 순항할 수 있는 근간을 이뤄낸 것이다.
어떠한 시련과 좌절에도 꿈을 간직하고, 마침내 꿈을 현실로 이룬 사람들에게 우리는 찬사 와 박수를 보낸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미래를 먼저 보고, 그 꿈을 좇아 실현하고, 꿈을 나누어 꿈으로 사람들을 하나되게 하는 리더. 이런 리더를 ‘비전형 리더(Visionary Leader)’라 고 한다. 그 비전형 리더의 대표주자가 바로 월트 디즈니다. 
 
디즈니 = 상상
 
‘디즈니’가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십중팔구 ‘만화영화’ 또는 ‘디즈니랜드’로 대변되는 놀이동산을 떠올릴 것이다. 상상력이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인 ‘월트 디즈니’사. 이것은 창립자 월트 디즈니의 기업정신이기도 하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를 무대로 영화와 애니메이션, 출판 등 미디어와 유통산업의 공룡기업으로 성장한 ‘월트 디즈니’사의 출발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한 젊은이의 작은 꿈에서 비롯됐다.
1901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월트는 가난한 집안환경으로 인해 농장의 머슴으로 일하기도했다. 그러나 그는 헛간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렸고, 그 생활을 매우 행복해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꽃을 그리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받고 꽃송이 한가운데 사람의 얼굴을 하나 그려 넣을 정도로 월트는 상상력이 뛰어났다.
디즈니는 초년 시절 실패와 좌절을 유독 많이 겪었다. 뛰어난 상상력을 갖고 있었지만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캔자스 시에서 삽화나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로 활동했으나 “당신은 창의적이거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전혀 없으니 신문 편집자로나 일하시오”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지닌 꿈과, 그것
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초기에 제작했던 단편 만화영화들도 대부분 실패했다. 하지만 어떤 시련도 확신에 찬 그의 꿈을 꺾지는 못했다. 그는 주린 배를 채우려 거리를 헤맬 때나 사업에 실패해 실의의 나날을 보낼 때조차도 “실패했지만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으며, 젊은 시절에 고난을 겪는것은 중요한 통과 의례”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의 인생에서 실패란 그를 올곧게, 강하게 만들어준 디딤돌이었던 것이다.

빵 부스러기 나눈 쥐가 미키마우스 모델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 미키마우스는 실패의 쓰라린 경험 속에서 탄생했다. 최초로 성공을 거둔 애니메이션 작품(<오스왈도, 더 럭키 래빗>)의 판권을 어이없게 강탈당한 후 낙심하던 디즈니는 지저분한 창고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때 생쥐 한 마리가 허물어진 벽 틈에서 고개를 삐쭉 내밀었다. 생쥐에게 빵 부스러기를 조금 나눠줬더니 조심조심 그의 곁으로 다가 오는 것이었다. 오갈 데 없는 생쥐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낀 그는 생쥐에게 ‘몰티마’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처럼 지냈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쥐, 어린이들의 친구 ‘미키’의 탄생을 알린 순간이었다.
디즈니는 1928년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찰리 채플린의 이미지를 몰티마에 얹어서 깜찍하고 지혜로운 ‘미키마우스’라는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는 “당신이 어떤 것을 꿈꿀 수 있다면 그것을 실현할 수도 있다”면서 “나의 모든 것이 바로 생쥐 한 마리에서 시작됐음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디즈니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꿈을 향해 전진하는 열정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파시켰다. 휘하의 미술가들과 수백 명에 달하는 직원들에게 꿈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도록 격려했다. 디즈니의 꿈에 매료된 직원들은 그의 꿈을 나눠 갖기 시작했다. 그가 직원들에게 나눠준 꿈은 열정이 되어 지금도 디즈니랜드에 살아 있다. 이것이 디즈니 리더십의 요체인 꿈의 힘이다. 
디즈니가 평생 동안 노력한 것은 새롭고도 놀라운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거나 만드는 것이었다.
월트 디즈니는 돈을 버는 대신 행복을 파는 데 주력했다. “디즈니 성공의 진정한 비밀을 알고 싶은가? 그 비밀은 디즈니가 돈을 벌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파는 것은 행복이다. 만일 여기서 일하는 게 기분 나쁘다면 당장 이곳을 떠나라. 우리가 팔고 있는 것은 행복이니까”라고 강조한다.
월트 디즈니가 비저너리 리더로서, 더 나가서는 위대한 경영자로서 사업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익을 생각하기 전에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 그리고 회사의 비전과 가치에 진정으로 동참해 헌신하는 사람들하고만 함께 일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꿈, 믿음, 용기, 실천 중 제일은 ‘꿈’
 
어떤 부부가 디즈니에서 인턴사원을 하고 있는 아들의 초대로 디즈니월드를 방문했다. 함께 여유를 갖고 즐기던 아들이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온갖 수작을 부려 그녀를 웃기고 돌아와서 숨을 헐떡이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저 여자분이 아까부터 인상을 쓰고 다녔거든요. 만약 계속 얼굴을 찡그려봐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얼굴을 찡그릴 것 아닙니까? 여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표방하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되지요.”
아들의 프로정신을 대견해하면서도 아버지가 한마디 거들었다. “월트 디즈니가 죽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 사람이 말한 비전 타령이냐?” “디즈니는 없지만 그의 비전은 여기에 살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디즈니 테마동산이 세계 초일류로 운영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전의 힘이다. 울상인 손님의 기분을 바꾸라는 규정은 디즈니월드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정식 직원이 아닌 인턴사원조차도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꿈의 동산을 만드는 데 동참하겠다는 열정을 공유하도록 한 게 디즈니의 업적이다.
 
“나는 가끔 나를 조그만 꿀벌이라고 생각한단다. 여기저기 스튜디오에 다니면서 꿀을 모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극을 준단다. 아마 그게 내가 하는 일인 듯싶구나.” 
 
“아저씨가 미키 마우스를 그리는 사람이냐?”는 호기심 많은 꼬마 손님의 질문에 대한 월트디즈니의 답변대로 그는 꿈을 나르는 꿀벌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 위대한 꿀벌은 맨 먼저 꿈이라는 달콤한 꿀을 만들었고 누구도 맛보지 못했던 달콤함을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그리고 꿈이라는 이름의 꿀을 날라 디즈니사의 전 직원이 달콤한 꿀을 잘 만들고 사용하며 크
게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
디즈니의 성공은 꿈, 믿음, 용기, 실천이라는 네 가지 핵심요소를 종업원들에게 전파하고 감동시키며 실천하게 함으로써 이뤄진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식 표현을 빌리자면, 디즈니 리더십의 요체는 꿈, 믿음, 용기, 실천이고 그 중의 제일은 바로 ‘꿈’이다. 

출처: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리더십, 월트디즈니


이건희 - 전 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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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리더는 없다. 윈스턴 처칠, 헨리 포드, 아이아코카등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영웅적 리더들도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뿐만 아니라 많은 인간적 결함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다만 세인들과 역사가 그들의 어떤 면에 보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라에서는 앞으로 더
많은 영웅들이 배출될 거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우리도 영웅만들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2002년 12월 22일 주요 신문에는 ‘삼성 그룹 사상 초유의 실적, 이건희 회장, 치하와 덕담’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이병철 창업회장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 취임 15년만에 매출액이 137조원으로 10배, 세전 이익은 1,900억원에서 15조 1,000억원으로 79배, 시가 총액은 75조원으로 75배 늘어났으며, 삼성 전 계열사중 적자를 낸 곳이 하나도 없는 상
황에서 거행된 신라호텔 만찬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삼성이 국내 정상은 물론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섰으며, 이회장 승계이후 질적․양적으로 그룹을 완전히 바꿔놓은 결실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사상 최대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이 ‘나는 10년 후에 삼성이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져 식은 땀이 나고, 다리가 저려서 잠을 잘 수 없다’며 위기의식을 불어 넣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그는 좋은 실적을 들을수록 겁이 난다고 했다. 아직 세계 초일류 기업까지 가야할 길이 많은데 긴장이 풀릴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모두가 승리에 도취되어 있을 때 ‘잘 나갈수록 위기를 생각하라’는  거안사위()의 화두를 던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한국기업사의 신기록을 연달아 바꾸어 왔다. 취임 6년 만인  1994년 최초로 조 단위 이익을 실현했으며, 2000년에는 전 계열사 흑자에 힘입어 순이익 10조원, 2002년 에는 순이익 15조원의 벽을 넘어섰다. 불가항력으로 여겨지던 소니의 시가 총액을 크게 넘어섰으며 브랜드 가치 역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일본 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삼성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에 기인한다는 특집기사를 실었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건희 회장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경영자가 없는 것이 일본 기업의 최대 약점이라고까지 평했다.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은 파이낸셜뉴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
는 올해의 인물 100인’으로 꼽히는 등 해외에서 더 크게 조명받고 있다. ‘뉴스위크’지는 이회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수도자적 제왕(The Hermit King)’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은 소소한 일은 관여하지 않고 큰 줄기만 챙기면서도 실제로는 삼성 그룹 전체를 움직였다. 무엇이든 삼성그룹에서 내려지는 중요 결단은 그의 몫이다. 하지만 결단이 내려진 후 구체적인 시행에 따른 권한은 책임자들에게 위임했다.   
 
위대한 리더는 스토리텔링에 강하다. 이건희 회장 역시, 화려하지는 않고 밋밋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러 리더 중 한명이다. 이건희 회장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화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시의 적절한 화두를 가지고 사람과 회사를 바꾸고, 그 화두를 통해 이제는 다른 기업과 사회, 국가 까지도 바꾸어가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삼성은 세계시장에서 ‘그저 그런 수준의 값싼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인식됐다. 이 회장은 이를 탈피하기 위해 ‘양 중심’에서 ‘질 중심’의 사고로 전환하면서 회사 경영의 기본 틀을 바꿔 나갔다. 이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시작으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슬로건을 통해 관리의 삼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을 주창했다.  
이 회장은 이를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제트기가 초음속 제트기로 넘어가려면 일반 비행기 부품으로는 불가능하다. 선진 기업을 앞서려면 마하 1이 아닌 마하 2-3이 가능하도록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서, 질을 위해서라면 양을 희생시켜도 좋다고 강조했다. 또한 R&D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R&D는 보험이다. 이
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농부가 배가 고프다고 뿌릴 종자를 먹는 행위와 같다’고 농부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자신의 책상 위에 삼성전자 제품을 일렬로 진열한 뒤 망치로 이를 하나하나 부수면서 “모든 것을 다시 만들라”고 경영진에게 호통치기도 했다.  
 
 기업에서 같은 물건을 만들더라도 세계적인 명품을 만드는 일류 회사와 그저 평범한 수준의 물건밖에 만들지 못하는 이류 회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이건희 회장은 세계 1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스포츠 선수 사례를 들었다. 0.01의 미세한 차이가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한 사람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만든다. 이처럼 1등과 2등의 차이는
엄청나다. 스포츠에서나 경영에서나 이는 마찬가지이다.  
이건희 회장은 미래의 삼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신수종사업을 고민하다  급격히 변해가는 환경 속에서 영원한 경쟁력은 폼나는 신사업이나 탁월한 기술이 아니라 미래를 책임질 천재급 인재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 하에 “앞으로는 천재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온다. 사장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인재를 스카웃하라”는 화두를 꺼내 들었다. 그는 천재급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업무의 절반을 쓰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장단 평가기준에도 이를 40% 이상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핵심 인재를 발굴, 육성하는 것을 그룹 경영자의 최고 책무로 만든것이다.  
 
그렇다면 정곡을 찌르는 이회장의 화두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는 매년 수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과학기술 잡지를 숙독하며 첨단 기기를 분해하는 등 상상력을 마음껏 키우는 스타일이다. 무엇이든 일단 관심을 갖게 되면 사물의 본질을 꿰뚫을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웬만한 첨단 제품이 출시되면 곧바로 구입해 자택에서 직접 분해하고 재조립해보면
서 기능을 파악한다고 전해진다. 이 회장은 평소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도 한 분야에 관한 책을 1,000권 읽으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특정 관심 분야에 대한 편집광에 가까운 몰입을 통해, 사물과 업()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을 취미처럼 즐긴다. 이와같이 밤낮없이 파고드는 호기심과 집중력, 상상력이 탁월한 화두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사장단과 전문가들의 말을 경청한다. 이 회장은 선친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붓글씨로 쓴 ‘경청()’이란 휘호를 받아 이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그는 연구하고 고민하고, 경청하면서 화두를 정리하고 그 화두가 결정되면 끝없이 말을 쏟아 부으면서 모두가 공감하고 실천 할 때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리더이다.  
 
이건희 회장의 최근 화두는 창조경영이었다. 삼성이 이미 세계 선두권에 진입해 있는 만큼 다른 기업을 벤치마킹하거나 모방할 수 있는 쉬운 길에서 벗어나 삼성만의 고유한 독자성과 차별성을 구현할 수 있는 험난한 여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20세기와 21세기의 경영은 다르다. 20세기에는 물건만 잘 만들면 1등이 됐지만 지금은 품질에서 별 차이가 없다. 21세기에는 여기에 디자인·마케팅·R&D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창조적 경영으로 세계 일류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제 창조경영이라는 화두는 삼성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 기업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초라 할 수 있다.   
 
리더십은 영향력이다.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에 걸맞게 책임도 커지게 된다. 얼마 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이건희 회장과 오늘도 초일류 기업 건설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삼성인들이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화두이다.

출처 :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리더십, 삼성, 이건희


카를로스 곤 , 변화 혁신의 리더 - 르노 닛산 자동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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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십의 본질은 성과 창출에 있다. 카를로스 곤은 2조 엔이 넘는 부채, 대규모 적자, 최저 수준 가동률, 대기업병과 관료주의가 만연한 파산 직전의 ‘병든 공룡’ 닛산자동차에 사장으로 취임해 단 1년 만에 사상 최대 흑자로 탈바꿈 시키는 기적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그는 2000년 말 <타임>지와 CNN이 공동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CEO’로 등극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오토모티브 뉴스>지가 세계 자동차 메이커의 탁월한 CEO에게 주는 ‘올해의 경영자 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한편 곤은 2004년 외국인 경영자로는 처음으로 일본 정부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인 ‘남수포장’(藍綬褒章)을 받기도 했다.
 
‘재생 청부인’ 특명 띠고 닛산에 파견
  카를로스 곤은 레바논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를 둔 레바논계 이민 3세로 1954년 브라질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랐으며, 프랑스의 명문 국립 이공과 대학을 졸업했다. 영어·프랑스어·이탈리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며, 프랑스와 브라질 국적을 갖고 있다. 그는 타이어 메이커 미쉐린에 입사, 31세(1985년)에 남미 사업 총괄자가 됐고, 35세에 북미 미쉐린 CEO가 되는 등 최연소 승진의 주인공이 되어 1,000%가 넘는 인플레로 회사가 고비를 맞았을 때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력과 추진력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1996년 42세 때 르노에 연구개발 및 제조담당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됐다가 경영위기에 처한 닛산이 르노에 인수되면서 1999년 6월 ‘재생 청부인’의 특명을 띠고 닛산에 파견됐다. 그가 취임할 당시 일본 내에는 “일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경영자가 일본 문화가 숨쉬는 닛산을 제대로 경영할 리 없다”고 반대하는 여론이 많았다. 카를로스 곤은 급진적 구조조정 덕분에 처음엔 ‘도살자’ ‘점령군’ 등의 비난도 받았으나 닛산이 극적인 부활에 성공하면서 일약 일본의 영웅이 됐다.  
 
  타이타닉처럼 서서히 침몰해가던 닛산자동차를 뛰어난 리더십과 조직 장악력을 통해 위기에서 회생시킨 그의 경영술은 한 사람의 현명한 리더에 의해 조직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뀔수 있음을 증명하는 실례로 일컬어지고 있다.  
 
위기의식 조성과 철저한 실행력
  변화혁신의 리더로서 카를로스 곤은 우리에게 두 가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적 위기의식 조성과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성과를 창출해내는 철저한 실행력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싫어하기에, 변화하지 않으면 바로 죽는다는 위기를 피부로 느껴야만 비로소 변화에 동참한다. 따라서 변화혁신의 첫 단계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닛산 역시 회사가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사무실과 생산현장에서는 위기의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곤에게 “닛산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
니 “집이 불타고 있는데 누구도 불을 끄려 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더군요”라고 통렬하게 대답했다.
  중환자실에 누운 닛산을 수술하면서 그가 제일 처음 투여한 약은 강력한 위기의식 조성이었다. 곤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닛산은 침몰하는 배다. 우리는 불타는 갑판 위에 있다. 살기 위한 선택은 단 하나, 바다에 뛰어드는 것뿐이다”라고 외치면서 모두가 위기를 현실로 체감케 했다. 그는 “위기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종업원이 둔감해져 수익성 있는 회사를 만들 수 없다. 위기감을 체계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기업 경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라고 위기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후 카를로스 곤의 리더십은 강력한 실행력으로 꽃피운다. 곤은 “실행이 곧 전부다. 이것이 나의 지론이다. 아이디어는 과제 극복의 5%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디어의 좋고 나쁨은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라고 말한다. 비즈니스를 전쟁으로 표현하는 카를로스 곤은 ‘확고한 의지’와 ‘강력한 실행’이야말로 비즈니스의 모든 것이라는 신념 하에, 한번 결정한 것은 어떤 비판을 받더라도 철저하게 실천했다. 취임 직후 2002년 말까지 2조1천억 엔의 부채를 7천억 엔으로 삭감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닛산 리바이벌 플랜(Nissan Revival Plan)’을 제시하면서, 이 공약을 어기면 전체 임원들과 함께 닛산을 떠나겠다는 충격 선언을 했다. 이후 특유의 추진력으로 속도감 있게 닛산에 대한 대수술을 감행했다.
  그가 일궈낸 수치상의 변화는 혁명에 가깝다. 4천2백억 엔의 자산(85%) 매각, 2년간 전체의 14%에 해당하는 2만1천 명의 인원 감축, 20개 판매회사 사장 교체, 5개 공장 폐쇄, 20% 구매비용 삭감 등 처음 약속한 바를 하나도 빠짐없이 충실하게 이행했다. 그는 이 같은 독보적인 비용절감 기법으로 인해 ‘코스트 킬러(Cost-killer)’ 혹은 ‘코스트 커터(Cost-cutter)’ 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곤의 혁신이 비용절감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그는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비용 절감 외에도 핵심 인력 외부 영입, 파벌주의 극복, 부서간 장벽 파괴, 철저한 능력주의 및 성과주의 실시와 같은 방안을 실천에 옮겼다.
  이 같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공격적인 신차 투입 등으로 닛산은 2000년 56억 달러 적자에서 2001년에는 3천7백20억 엔 흑자로 돌아섰으며, 1조4천억 엔에 달하던 악성 부채를 모두 변제했다. 10여 년 동안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이룰 수 없었던 닛산의 재건을 카를로스 곤이 해낸 것이다.
 
경영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곤은 실행력과 결과를 중시한다. 그는 “아무리 좋은 플랜을 짜도 성과가 5년 뒤에나 나온다면 리더가 신뢰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플랜을 실행하는 단계부터 조기에 성과를 올려 조직원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곤 사장의 업무 스타일은 스피드와 결단이 핵심이다. 카를로스 곤은 분초를 다투는 위기상황에서 단순명쾌하면서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거창한 목표를 설정해 긴장감을 연출하고, 사퇴라는 배수의 진을 치면서 공언했던 계획을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조기에 목표를 초과 달성함으로써, 저항하던 조직 구성원들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변화혁신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줬다.
 
<포천(Fortune)>이 “오늘날 경영자의 95%가 옳은 말을 하고 5%만이 그 말을 실행에 옮긴다”라며 실행력 부족을 꼬집은 것을 볼 때, 곤의 실행력은 실로 놀랄 만하다.
카를로스 곤의 말대로, 리더에 대한 기대감은 위기국면에서 고조된다. 조직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조직원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리더다. 가장 가혹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는가? 이것이 인물을 평가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극도로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했다면, 그 사람의 능력은 실증됐다고 봐도 좋다. 그런 인재에게는 차츰 더 큰 책임이 부여되는 직위를 맡기는 것이 좋다.
일본 닛산자동차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의 거대 자동차 회사, 즉 르노와 닛산의 CEO를 겸임하고 있는 카를로스 곤은 세계 자동차 업계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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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 머무는 것은 경영이 아니다.’늘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카를로스 곤이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출처: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닛산, 리더십, 카를로스 곤


빌 케이츠 -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현 창조적 자본주의 창출
 
전 세계를 통틀어 현존 인물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을 꼽으라면 14년째 세계 최고 갑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돈만으로 성공을 재단할 수는 없다. 진정한 성공은 사회발전에 대한 공헌 정도, 즉 그로 인해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이 됐는가 하는 점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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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전 세계 PC의 90%가 MS의 운영체계를 사용하고 있으며,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600억
달러를 출연한 세계 최대의 자선재단이다. 빌 게이
츠 MS 회장의 성공은 인류에게 지식정보 사회를
선물한 점과 더불어 솔선수범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를 실천함으로써 이룩했다.  
  빌 게이츠는 기술분야의 천재가 아니었다. 최초의
성공은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의사결정에서 비롯됐다. 빌 게이츠와 비견되는 스티
브 잡스는 기술적 완벽성에 목숨을 걸고 기술을 독
점하려고 했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1980년대 당시 컴퓨터 왕국 IBM이 메인 프레임에 의존하는 독자적
폐쇄형 시스템을 고집할 때, 5만 달러에 Q-Dos를 인수해 IBM에 납품하면서 만든 컴퓨터에서 호환이 가
능한 오픈 시스템을 고집했다. 빌 게이츠는 이미 학창시절에 개인용 컴퓨터(PC)가 세상을 장악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독점보다는 표준을 장악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미래 통찰력에 근거한 이 하나의 의사결정이 미래를 갈랐다. 그는 PC 라는 개념조차 희미한 상태에서 가정과 책상마다 하나의 PC가 있는 세상을 꿈꿨고, 마침내 이 꿈을 이룸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가 됐다.
 
하버드대 존 코터 교수는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구상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2.4%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빌 게이츠는 그의 저서 《생각의 속도》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2년 안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를 하고, 10년 안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2~3년보다는 10년 뒤에 시선을 고정하기 위해 1년에 두 번씩 미 서북부에 있는 작은 별장에서 일주일간 칩거하며 미래를 구상하는 생각 주간(Think Week)을 갖는다.  
 
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
  빌 게이츠로부터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리더십 포인트는 핵심인재 확보, 그리고 그들로부터 무한대의 헌신과 몰입을 이끌어내는 능력에 있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탁월한 의사결정이 뭐냐는 질문에, 폴 앨런과 스티브 발머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한 것을 꼽은 바 있다. 그는 앞으로는 인재 영입을 위한 전쟁(war for talent), 즉 IQ 싸움이 가장 중요하며, 따라서 세계적 금융회사인 골드만 삭스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고 100번도 넘게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 회사의 최고 인재 30명만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면, 그 팀은 곧바로 또 하나의 MS로 비상할 것이다. 유능한 인력이 빠지고 나면 모든 상품은 순식간에 퇴물이 되고 말 것이다. 남은 사람들도 의욕을 잃어버리고 함께 일한다는 즐거움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돈보다 사람을 중시했다.
그는 사람만이 최고의 자산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의 열정과 자신감을 고취시키는 것이 CEO의 첫 번째 덕목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모든 정보의 투명한 공유를 통한 동참 유도, 스톡옵션을 통한 주인의식 고취, 격의 없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자신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특히 빌 게이츠는 핵심인재들과 회사의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함으로써 직원들이 오너 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빌 게이츠는 “어떤 일이 얼마만큼 진전됐는지 직원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싶은 마음도 생격난다. 얼마나 시급한지, 재정여건은 어떤지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말하곤 했다.
  빌 게이츠의 세 번째 리더십 비결은 성공을 극도로 경계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는 매우 특별한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오래 전에 이미 ‘전쟁에서 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전승불복(戰勝不復)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는 “성공은 어설픈 교사다. 현명한 사람들도 자신에게는 실패란 없다고 확신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 제품은 2~3년 내에 시장에서 구식 제품이 될 것이며, 이는 스스로에 의해 혹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는 전략적 폐기를 계속하고, 조직 내에 위기감을 전파하고 긴장을 유지시킴으로써 장기간 성공하는 조직으로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빌 게이츠는 “어떤 기업이든 현재의 영광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리더의 지위를 이용해 회사 전체에 위기감을 조성했다. 극단적인 경우 1년 안에 우리도 망할 수 있다. 매일 아침 눈 뜨는 순간 혁신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끝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다. 빌 게이츠 회장은 성공을 경계하는 한편으로 실패한 기업의 직원을 의도적으로 채용해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다
빌 게이츠는 성공을 꿈꾸는 차세대 리더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주변 사람까지 전염시키는 용암처럼 솟구치는 열정, 그리고 끝없는 학습열이 그것이다. 빌 게이츠는 성공의 요인을 묻는 질문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직업을 갖고 있다. 매일 일하러 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거기엔 항상 새로운 도전과 기회와 배울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만약 누구든지 자기 직업을 나처럼 즐긴다면 결코 탈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매일 아침 눈 뜰 때 오늘 할 일과 곧 개발할 기술이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하면 더없이 흥분되고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한다. 그는 매주 72시간씩, 심지어 90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때도 많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모든 리더(Leader)는 리더(Reader)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오늘날까지 아무리 바빠도 매일 한 시간씩, 주말에는 두세 시간씩 책을 읽는다”는 빌 게이츠 역시 예외가 아니다.
빌 게이츠는 “나는 힘이 센 강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의 성공비결이다. ‘Change(변화)’의 g를 c로 바꿔보라. ‘Chance(기회)’가 되지 않는가? 변화 속에 반드시 기회가 숨어 있다”며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1975년 3학년 때 하버드 대학을 중퇴한 빌 게이츠는 최근 23년 만에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졸업장과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전 세계적 불평등 문제 해결방안으로 창조적 자본주의 (Creative Capitalism)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그는 ‘시장의 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고 기업이 시장에서 이윤을, 정치가 표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방안(창조적 자본주의)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불평등을 줄이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 졸업생들에게 여러분은 세상의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봉사했는지를 기준
으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평가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출처 :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리더십, 빌게이츠


마쓰시타 고노스케 - 마쓰시타 전기 창업자
인재의 숲’ 조성한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연구한 동서양 수십 종의 서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세계 최고 리더의 반열에 오른 비결은 마쓰시타가 경영과 리더십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실천한 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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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90세 때 어느 기자가 기업가로서 존경과 부를 함께 얻은 비결을 묻자, 하느님이 주신 3가지 은혜 덕분이라고 밝혔다.
  “첫째, 집이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를 하며 고생을 하는 사이에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둘째,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 항상 운동에 힘써왔기 때문에 늙어서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나 물어가며 열심히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직원들에게 수시로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가 있다면 불평을 하느냐, 감사를 하느냐는 것뿐이다. 감옥이라도 감사를 하면 수도원이 될 수 있다”고 긍정적인 사고를 견지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역경을 하늘이 내린 선물로 삼아 세계 최고의 리더로 성장한 데서 우러나는 비범함과 숙연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역경은 당사자를 강하게 조련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회사가 항상 순풍에 돛을 단 듯 순조롭게 발전하면 사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온실 속 화초가 된다. 따라서 항상 순조롭게 발전하는 회사는 오히려 불행한 회사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세계 최대 종합 가전 메이커인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로 노사 협조, 인재 중시, 종신 고용 등 소위 일본형 경영의 창시자다. 마쓰시타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9세 때 초등학교를 중퇴한 후 견습사원 생활을 전전하다가 1918년 24세의 나이에 자본금 백 엔으로 쌍소켓을 제조하는 마쓰시타 전기를 창업했다. 1년에 절반은 누워 있을 정도의 약골임에도 이후 독자적인 경영이념과 수완으로 급격한 성장을 일궈냈으며, 1989년 94세로 운명할 때는 마쓰시타 전기를 내셔널(National)과 파나소닉(Panasonic) 브랜드를 가진 종업원 13만 명의 세계 20위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마쓰시타는 일본 내 연간 개인소득 순위에서 여러 차례 1위를 했지만 손가락질을 당하기보다는 기업 영웅으로 숭배받았다. 부의 축적 과정이 투명하고, 다른 많은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줬을 뿐만 아니라 매우 겸손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천 년간 가장 위대한 경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역경은 당사자를 강하게 조련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회사가 항상 순풍에 돛을 단듯 순조롭게 발전하면 사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온실 속 화초가 된다. 따라서 항상 순조롭게 발전하는 회사는 오히려 불행한 회사다."

올바른 인재 키워내는 조직
 
마쓰시타를 연구한 동서양 수십 종의 서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세계 최고 리더의 반열에 오른 비결은 마쓰시타가 경영과 리더십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실천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마쓰시타는 기업이윤의 원천은 인간에 있으므로 비즈니스는 마음의 게임이며, 사람들의 잠재능력을 극대화하는 것, 즉 모든 종업원의 능력을 마지막 1%까지 완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CEO를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순례자와 같다고 믿었다. 자신이 젊은 시절 겪
었던 가난의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견인할 수 있는 훌륭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 CEO의 소명이라고 본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발 대공황에 1929년 일본의 겨울은 혹독했다. 그때 한 계열사가 위기를 맞았다. 판매가 격감하고 재고는 쌓였다. 35세인 젊은 마쓰시타는 직원들을 모았다.  
  “근무를 반나절로 줄인다. 매주 이틀은 휴무다. 생산도 반으로 감축하겠다.”
  마쓰시타의 발언에 직원 모두가 숨을 죽이며 ‘드디어 해고와 임금 삭감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장은 월급 전액 지급을 약속했다. 감격한 종업원들의 가족까지 판매에 나섰다. 두 달 만에 재고가 소진되고 공장은 정상으로 돌아섰다. 마쓰시타는 불경기를 역이용해 경쟁자를 크게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지난 1997년 모든 기업이 불황에 허덕일 때 마쓰시타는 숙련공의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72년에는 일본 기업의 58%가 55세 정년을 채택하고 있었으나 마쓰시타는 60세 정년을 채택하는 혁신을 단행했다.
마쓰시타는 누구보다 사람 만들기에 정성을 쏟았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창업 때부터 새로 뽑은 사원을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기숙사에 입주하도록 했다. 마쓰시타 부부는 신입사원의 양부모가 돼 규율과 절도를 가르치고 인생 지도를 담당했다. 그의 부인은 사원의 건강까지 챙기며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적합한 식사를 제공하고 뜸을 뜨는 등 어머니 역할을 대신했다.  
이 전통은 나중에 회사가 커지면서 각각의 공장에서 공장장 부부가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통해 인재교육을 담당하는 형태로 탈바꿈했으며 1934년 사원양성소가 세워져 3년간의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형태를 갖췄다. 마쓰시타는 물건을 만들기 전에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직원들에게 고객이 “무엇을 만드는 회사인가?”라고 물으면 “마쓰시타 전기는 인간을 만드는 회사입니다만, 전기제품도 만듭니다”라고 말하도록 가르쳤다.
 
시대를 초월하는 통찰력
 
사람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다는 주위 평에 대해 마쓰시타는 다음과 같이 겸손한 답변을 했다. “나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유를 생각해보니 짐작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부하 직원 모두가 나보다 위대해 보였다는 것이다. 모두 나보다 배운 것이 많고 재능이 많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회사의 사장은 ‘우리 회사 직원은 도무지 형편없고 다루기도 힘들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사장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고 수완이 뛰어나서 부하 직원이 어딘가 부족해 보였을 수도 있지만, 그런 회사는 반드시 경영이 잘되지 않는다. 내 머리가 나빠서 머리가 더 좋은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몸이 약해서 힘센 사람에게 일을 맡기다 보니 17만 명이 나와 함께 일하게 됐다.”
사장은 종업원들의 걱정을 자신이 모두 짊어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걱정하는 것이 사장의 역할이다. 사장이 걱정 없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는 회사는 존재할 수 없다. 사장은 항상 걱정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존재여야 한다. 마쓰시타는 경영자는 항상 걱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열사)사장님들은 10년 앞을 보고 경영을 하시오. 나는 1백 년, 2백 년 앞을 내다보는 일을 하겠소”라고 마쓰시타는 늘 말했다. 마쓰시타는 “마쓰시타 전기의 장기적인 목적을 어느 정도 멀리 보고 정했습니까?”라고 묻자, “250년입니다”라고 답했고, “목적을 성취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라는 질문에는 “끈기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쓰시타는 경영을 넘어 철학자, 교육자로 변신하며 일본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47년에는 PHP, 즉 ‘번영을 통한 평화와 행복 연구소’를 설립해 사상적 계몽운동을 펼쳤다. 마쓰시타의 사람 육성에 관한 욕심과 투자는 비단 회사 내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기업을 떠나 국가의 미래도 함께 준비했다.
 
“평화와 행복은 사회가 번영돼야 얻을 수 있다. 번영은 좋은 정치로 이뤄지고, 이를 위해 사람을 길러야 한다”면서 1980년 86세 나이에 개인 재산 1백 억 엔을 털어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을 설립, 정치·경제 분야 최고의 차세대 리더 양성기관으로 만들었다. 마쓰시타 정경숙에는 지금도 2∼3백 대 1의 치열한 경쟁 아래 인재가 모여드는데, 연평균 10명 이내의 젊은이들만 받아들인다. 지금까지 배출된 3백여 명의 졸업생들은 국회의원 30명을 비롯해 차세대 일본을 이끌어가는 리더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아무리 큰 거목이라도 한 그루의 나무는 한계가 있다. 인재의 숲이 필요하다. 미래를 보고 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어 후세가 그 숲을 즐긴다. 마쓰시타는 2백 년을 내다보고 인재의 숲을 만들어놓고 세상을 떠났다.  
 
 출처 :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리더십, 마쓰시타 고노스케


손정의 - 소프트뱅크 회장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비전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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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는 안정적일 때 오히려 위기를 느끼고, 그러한 위기 속에서 기회를 느끼고, 현재를 위험 속으로 끌고 가는 사람(risk taker)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동서양을 통틀어 기업가 정신이 가장 투철한 경영자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1957년 일본에서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난 조센징 아이, 일본 아이들이 이유 없이 던진 돌에 맞아 피를 흘린 소년, 손정의는 중3 때 《료마가 간다》를 읽고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물론 하려면 1등이라야 했다. 이때부터 ‘일본 제일의 사업가가 된다’는 게 입버릇이 됐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2006년 6월, 손정의 회장은 자산총액 70억 달러로 일본 제일의 부자가 됨으로써 그 꿈을 달성했다. 얼마 전 마스시타 고노스케에 이어 일본 대학생과 신입사원들이 존경하는 두 번째 기업가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네트워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USA 투데이)’, ‘일본 경제를 침체에서 구할 영웅(저널리스트 다하라 소이치로)’으로 불리는 손정의 회장은 1981년 PC용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한 뒤, ‘야후’를 인수함으로써 한 단계 도약한다. 2001년에는 통신사업에 진출, 세계 최대 통신업체인 ‘보다폰’ 일본법인을 1조7천5백억 엔이라는 일본 기업인수 역사상 최고액으로 사들였다.  
 
과감한 의사결정, 강력한 실행력
손정의 회장 리더십의 핵심은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비전, 그리고 과감한 의사결정과 강력한 실행력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비전은 멀리 보는 습관에서 나온다. 손정의 회장은 “눈앞을 보기 때문에 멀미를 느끼는 것이다. 몇 백 킬로미터 앞을 보라. 바다는 기름을 제거한 것처럼 평온하다. 나는 그런 장소에 서서 오늘을 지켜보고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버드대학 에드워드 밴필드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장기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줄곧 생각해왔으며, 이러한 긴 시간적 수평선 위에서 필요한 의사결정을 해온 사람들이다.
손정의 회장은 보다폰 인수와 같은 중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30년 뒤의 관점에서 판단한다고 말한다. 즉 30년 뒤 회사가 가야 할 큰 전략적인 비전을 설정해놓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이 사업이 필요한 도메인(사업영역)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이다. 중장기 미래에서 거꾸로 역산()해오는 방법이다. 손정의 회장이 비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짐작케 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24살 창업 당시 손정의 회장은 허름한 창고에서 ‘직원 조회’를 소집했다. 직원이라곤 아르바이트생 2명뿐. 2명을 세워놓고 연단 대신 귤 궤짝 위에 올라가 일장 연설을 쏟아냈다. “우리 회사는 5년 이내에 1백억 엔, 10년 후에는 5백억 엔, 언젠가는 1조 엔대의 기업이 될 것이다.” 당장 먹고 살 형편이 막막한 처지에 거대기업 운운했으니 상상만 해도 과대망상 같은 풍경이었을 것이다. 기가 질린 직원 2명은 곧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소프트뱅크의 모습이다.
 
비전과 통찰력이 승률 좌우
손 회장의 멀리 보는 습관은 그의 나이 19세 에 만든 ‘인생 50년 계획’에서 그 싹을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0대에 이름을 날린다. 30대에 최소한 1천억 엔의 자금을 마련한다. 40대에 사업에 승부를 건다. 50대에 사업을 완성한다. 60대에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준다.”  
손정의 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과감한 의사결정과 실행력에서 그 빛을 발한다. 실패하는 경영자의 특성 중 하나가 과도한 조심(excessive caution), 즉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지나친 정보수집, 즉 ‘분석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위험부담을 줄인다는 이유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을 증대시킨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 역시 “유능한 경영인은 결정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코 미루지 않는다. 실패한 결정 10개 중 8개는 판단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제 때’ 결정을 못 내렸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라며 신속한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처음에 80% 옳은 것을 하는 것이 마지막 기회에 100% 정확한 것을 하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경영은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 아닌, 불확실성 속에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게임이다. 합리적이고 정확한 의사결정보다 실패를 무릅쓴 과감한 의사결정을 적시에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정의 회장은 “승패의 확률이 5할일 때 싸움을 거는 자는 어리석다. 승률이 1, 2할일 때라면 당연히 싸움을 걸지 않을 테니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9할의 승률이 7할의 승률보다 낫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승률이 9할이 될 때는 모든 것이 뒤처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승률과 기회이익은 반비례한다는 것이 손 회장의 의사결정 원칙이다. 승률을 높이기 위해 기다리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잠재적 기회이익이 줄어들게 된다. 100% 모든 것이 확실해질 때쯤이면 오히려 모든 것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정보의 양과 질을 고려해 적절한 때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그 다음엔 한눈 팔지 않고 전력 질주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승률 70% 비결은 비전과 통찰력이다. 그는 정보혁명의 숨소리가 까마득했을 26년 전에 이미 거대한 파도를 감지하고 파급경로 곳곳에다 남보다 앞서 투자를 해놓았다. 1996년 설립 1년도 채 안 된 야후의 가치를 확신하고 35%의 지분을 불과 1백억 엔에 사들인 일도 있다. 손 회장이 세계 최대 컴퓨터 전시업체 컴덱스를 인수하는 협상은 채 5분이 소요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과감한 베팅은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철저한 검토의 기반 위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눈여겨 봐야 한다. 손정의는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가 모험을 걸 때는 넘치는 도전정신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가 사전에 검토한 시뮬레이션 자료는 2만 쪽 분량에 달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는 위험한 곡예도 서슴지 않는 모험가가 아니라 주도면밀한 계산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이다. 예컨대 그는 회사경영을 파악할 때 무려 1천 개의 지표를 동원해 빈틈없이 검증한다. 이른바‘1,000중 체크’ 철학이다. 보다폰 일본법인을 매수할 때도 3천 회나 시뮬레이션을 한 끝에 사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손정의는 맨주먹으로 시작해 오늘의 소프트뱅크 왕국을 건설했다. 그의 오늘을 있게 한 데는 자신감과 열정, 그리고 방대한 독서라는 보이지 않는 무기가 숨어 있었다. 손정의는 대학시절 소프트웨어 유통사업을 시작한 후 자신감과 열정 하나만으로 일본 최고의 소프트웨어 제작업체를 끌어들이고 1억 엔에 달하는 자금을 빌릴 수 있었다. 손 회장의 통찰력은 독서에서 비롯됐다. 그는 26살 때부터 중증 만성간염으로 3년간 병원신세를 질 때 4천여 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사업구상에 몰두했다.  손정의 회장은 백년대계가 아닌 ‘3백 년 대계’를 추구한다. 그는 ‘3백 년 뒤에도 세계 톱을 달리는, 1백만 종업원을 거느린 초일류 기업’을 건설하기 위해 오늘도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인터넷의 거대한 물결이 멈추지 않는 한 자신의 혁명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자신한다.
손정의는 뛰어난 능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끄는 매력과 인격을 지니고 있다. 일본 재계의 비난과 공격 속에서도 그는 결코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 이유 없이 남을 공격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겸손과 타인 존중, 인간적인 매력까지 갖춘 인터넷 기린아 손정의 같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인류가 발전한다.
 
“눈앞을 보기 때문에 멀미를 느끼는 것이다. 몇 백 킬로미터 앞을 보라. 바다는 기름을 제거한
것처럼 평온하다. 나는 그런 장소에 서서 오늘을 지켜보고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
지 않는다.”
 
 출처 :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리더십


존 챔버스 - 시스코시스템즈
 CEO는 역경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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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벤처 붐이 한창이던 2000년 초, 인터넷 장비기업 시스코시스템즈(Ciscosystems)와 경제학(Economics)을 합성한 ‘시스코노믹스(Cisconomics)’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MS가 컴퓨터 시대 대표 기업이라면 인터넷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은 시스코시스템즈다. 인터넷상에서 행해지는 정보 운송의 75%는 시스코 제품을 통해 이뤄진다. 고객들이 요구하는 네트워킹 관련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End-to-end)’ 제공하는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다. 또 인터넷 회사답게 매출의 90%가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시스코시스템즈는 창업 16년 만인 2000년 3월 24일 시가총액 5천7백29억 달러를 기록, MS와 GE를 제치고 창업 이후 가장 빨리 시가총액 5천억 달러는 물론 세계 최고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1998년 <포브스>는 미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기업으로, <포천>은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시스코시스템즈를 선정했다. <포천>은 “시스코가 세계 최고 기업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존 챔버스 회장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라며 챔버스 회장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존 챔버스는 1998년 <비즈니스 위크>에 의해 세계 최고 경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스코 매출액은 그가 CEO로 임명된 1995년 당시 12억 달러에서 2005년에는 2백58억 달러를 넘어섰다.
 
존 챔버스는 웨스트버지니아대학에서 법학과 경영학을 전공했고, 인디애나대학에서 MBA를 받은 뒤 IBM에서 6년간 기술영업을 배웠다. 당시 IBM은 대기업 등 큰 고객만 상대했고 중소기업은 무시했다. IBM은 결국 고객들로부터 멀어져 PC 시대의 주도권을 상실했다. 그는 이때의 실패 경험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는 기업, 신기술에 앞서가지 않는 기업은 모든 것을 잃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생활도 비극적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어 왕 연구소에서 8년간 일하면서 1987년에는 미국지역 부사장을 역임했다.
디지털 혁명이 낳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존 챔버스 회장은 시스코시스템즈의 괄목할만한 성장 비결이 속도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덩치가 크다고 해서 항상 작은 기업을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느린 기업을 언제나 이긴다”고 강조한다. 그는 달력에서의 1년은 인터넷 비즈니스 세계의 7년과 같다고 설명한다.
기술의 진보속도는 너무나 빠른데 과거의 선도적인 기술기업이라고 해서 자신의 기술만 고집하다 보면 결국 경쟁기업에게 뒤처지고 마는 것이다. 일단 경쟁자가 기술적인 우위로 시장 선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이를 뒤집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경쟁자보다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술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스코의 성공신화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기인한다. 존 챔버스는 시장 리더 자리를 유지하고 필요한 속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부 연구개발보다는 새로 등장하는 잠재력 있는 기술업체로부터 아이디어와 인력을 사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M&A를 핵심전략으로 선택했다. 시스코가 이어가고 있는 ‘기술 취득자(technology acquirer)’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챔버스 합류 이후 시스코는 70개가 넘는 기업을 인수했다. 인수금액도 3백억 달러에 이른다. 이 때문에 시스코는 ‘인수합병 기계(Aquisition Machine)’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그러나 챔버스는 이러한 인수합병이 단지 기업의 덩치를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분야에 최고의 능력을 지닌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기술을 자체 개발해 성공을 거두는 기업은 앞으로 많지 않을 것이며, 다른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시너지(통합)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기업은 지금 씨를 뿌리고 3~5년 뒤 수확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장 진입의 기회를 놓쳤더라도 다른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만회할 수는 있습니다.”
인수합병은 실패확률이 70%에 이르는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시스코는 성공적 인수합병을 위해 1. 비전이 같은 기업, 2. 비슷한 문화를 가진 기업, 3. 기술개발이 완료돼 곧 상품화가 가능한 기업 등 5가지 원칙을 갖고 인수대상 기업을 엄격하게 선정했다.
존 챔버스 회장은 기업을 곤란에 빠뜨리는 2가지 문제는 기업들이 고객과 직원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행복한 고객과 더불어 매우 생산적인 직원들이야말로 회사의 핵심 자산 임을 잘 알았다.

편집증으로 살아남은 기업

챔버스는 1980년대 IBM처럼 고객들로 부터 멀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고객은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업무의 절반 이상을 고객의 소리를 직접 듣고, 중요 고객들을 만나는데 쓰고 있다. 직원들은 성과급의 1/3을 고객만족도에 따라 지급받는다. 시스코는 인재를 붙잡아두는 데 매우 뛰어나다. 왕에 근무할 당시 4천 명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던 아픈 경험을 가진 챔버스 회장의 인재에 대한 사랑은 남다른 바가 있다. 챔버스는 “세계적 수준의 기술자 다섯 명이 평범한 기술자 2백 명을 능가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상위 10% 이내의 우수한 인재들로 조직을 구성하고자 노력했다.
존 챔버스는 M&A를 핵심인재 확보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했다. 피인수기업의 핵심인재들에게 막대한 스톡옵션을 제공함으로써 인수합병을 통해 기술과 인재를 동시에 획득했다. 챔버스는 피인수기업의 직원을 양사 CEO 허락 없이는 결코 해고하지 않는다는 ‘마리오 원칙’을 엄격하게 지켰다. 그 결과 피인수기업 최고경영진의 70%가 시스코에 남아 있으며, 피인수 직원의 이직률이 시스코 직원들의 이직률보다 낮았다. IT업계의 자발적 이직률이 20%에 달하는 데 비해 시스코의 경우는 단 6%에 머물고 있다. 한번은 비전과 제품, 그리고 기술과 인수금액 등 모든 것이 좋았지만, 인수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회사 직원들이 불필요하게 되어 인수를 포기한 적이 있을 정도다.
챔버스는 직원들이 신명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챔버스는 매달 생일을 맞은 직원들과 생일 잔치를 벌인다. 모든 경영진은 일반 직원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존 챔버스는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챔버스는 “항상 리스크(위험)를 떠안고 시장의 변화를 미리 포착해 적극 대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챔버스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스코의 성공비결은 자신의 편집증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편집증은 변화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는 기업들은 반드시 사라지고 만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시스코가 너무 자기만족에 빠져 갈수록 명성을 잃어가는 몇몇 대형 시스템업체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인터넷 버블 붕괴와 더불어 시스코도 큰 타격을 입었다. 시가총액이 1년 만에 88% 가량 하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주니퍼 네트웍스 등 신생기업들의 맹렬한 도전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인터넷 벤처 붐을 타고 혜성같이 나타난 많은 기업들이 쓰러져 갔는데 시스코는 지금껏 건재하다. 시스코시스템즈는 최근 그간의 아픔을 딛고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간 성장동력이었던 인수합병 대신 R&D에 연간 33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자체 능력을 통해 성장하려는 전략으로 돌아서고 있다.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다. 리더는 역경을 먹고 자란다. 존 챔버스는 난독증 환자다.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이 자신을 비껴가기를 바라기보다는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 나는 학습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난독증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나 졸업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요.”  난독증 때문에 그는 어린 시절 학습 부진과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지만 부모와 주위의 도움으로 극복했다. 고등학교 졸업 성적은 반에서 2등이었다. 그는 지금도 독서를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역경을 통해 단련된 리더십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창출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처 :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리더십, 시스코, 존 챔버스


이나모리 가즈오 - 교세라 명예회장
진정한 도덕성 지닌 전설의 경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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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고고한 인격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을 때 구성원들은 존경과 신뢰로 보답한다.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은 인격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어 놀라운 성과를 창출한 대표적인 CEO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한 영향력(valuable influence)을 행사함으로써 탁월한 성과를 창출해나가는 끝없는 과정이 바로 리더십이다. 론 시몬스는 《인격의 힘》이란 책에서 “리더십에 대한 토론은 능력과 경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반드시 한 개인의 인격과 성실성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고 말했다. 폴 케네디 역시 “21세기 기업가나 정치가는 성직자에 준하는 고도의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며, 경영자의 도덕성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주장한다.
리더가 고고한 인격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을 때 구성원들은 존경과 신뢰로 보답한다.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인격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어 놀라운 성과를 창출한 대표적인 CEO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1959년 27세의 나이에 3백만 엔의 자본금으로 교세라를 창업해 오늘날 종업원 5만4천 명, 매출액 5조 엔을 넘보는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회사 조직을 공정별·제품별로 쪼개 독립채산이 가능한 이른바 아메바 경영의 창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쇼이치로와 더불어 가장 존경받는 ‘일본의 3대 기업가’로 꼽히고 있으며, 일본 재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기도 한다. 이나모리 가즈오를 존경하는 청년 기업인들은 ‘세이와주쿠(盛和塾)’라는 자발적 경영모임을 만들어 그의 경영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세이와주쿠는 일본뿐 아니라 타이완, 브라질, 중국에까지 퍼져가고 있으며, 상장 등록법인 61개를 포함해 총 3천2백 명이 소속돼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이곳 출신이다.  
경영자에게는 균형 잡힌 인격이 요구된다. 이나모리 가즈오 리더십의 핵심은 평상시 갈고 닦은 인격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도덕성에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평생 기업경영의 길을 구도자처럼 걸어왔으며, 세상과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철학을 몸소 실천해왔다. 그는 “인격이란 인간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반복학습해야 터득할 수 있다. 스포츠맨이 매일 근육을 단련하지 않으면 훌륭한 몸매를 유지할 수 없듯이 경영자도 눈 깜짝할 사이에 타락하고 만다. 기업의 요체는 대의명분을 확립하고 경영자가 바르고 고매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인간으로서 기업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늘 자문자답하면서 연마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기업 내에 확고한 윤리관을 구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라고 강조한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기업윤리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뿐 아니라 일반직원까지 모두 윤리의식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이나모리 회장은 실적보다는 인격을 우선적으로 따져 리더의 자리에 앉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격없이 기지만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기지를 과신하거나 잘못 사용할 경우 기업을 파탄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격이 기업의 미래를 좌우

이나모리 가즈오는 ‘조사 결과 창업자 사망 후 실적이 급락하는 기업이 많았다. 또 1백 년이 넘는 경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개 영업이익률이 13% 수준에 머물렀다. 창업 이후 1백 년이 넘고 창업자가 사망해도 높은 실적을 내는 기업의 공통점은 직원들이 얼마나 경영이념을 잘 공유하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믿음 아래 ‘물심양면으로 전 직원의 행복을 추구하고 인류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공헌한다’는 한 차원 높은 숭고한 경영이념을 정립해 이를 직원들과 철저히 공유했다. 대의명분이야말로 높은 보수 수준과 같은 물리적인 인센티브를 뛰어넘는 최고의 동기부여 수단임에 틀림없다. 사심(私心)을 떠난 고매한 목적을 제시하자 그는 당당하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고 직원들도 더 열심히 일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기업의 흥망성쇠는 궁극적으로 기업가의 사람됨에 달려 있음을 제대로 간파한 몇 안 되는 경영자다. 그는 기업가의 철학과 신념, 인격 만큼 그 기업의 생명과 진로, 규모가 결정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경영자가 이윤추구에 목표를 두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바른 길을 가겠다는 신념과 철학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철학을 경영 현장에서 일관되게 실천했다. 이런 생각은 1984년 전기통신사업의 자유화에 따라 KDDI를 창업하면서 한층 견고해졌다. 그는 거대 공룡 NTT에 맞서 통신회사 KDDI를 설립할 때,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다음과 같이 자문했다고 고백한다. “네가 전기통신사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것은 정말로 국민을 위해서인가? 회사나 자신의 이익을 꾀하고자 하는 사심이 섞여 있지는 않은가? 과시적인 행동은 아닌가? 그 동기는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순수한 것인가?”
그는 6개월 후 ‘세계적으로 비싼 일본의 통신요금 수준을 낮춰 국민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주자는 선한 목적 외에는 전혀 사심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실행의 용기와 결단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바람직한 영향력은 이런 정신에서 나온다. 이렇게 출발한 KDDI는 3개 사가 참여한 제2 민영통신업체 중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 KDDI의 성공은 전 종업원이 자신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믿는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일화 하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부인은 한국 농업 근대화의 아버지이자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고() 우장춘 박사의 넷째 딸이다. 어느 날 회사 운전기사가 집으로 이나모리 회장을 모시러 왔을 때 마침 부인이 외출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나모리 회장이 “가는 데까지 같이 타고 가자”고 하자, 부인은 “당신 (개인) 차면 타고 가겠지만 회사 차는 안 돼요”라며 걸어갔다. 부인은 “공사 구분은 확실해야 한다며 회사 차를 사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당신 스스로 얘기했던 것, 기억 안 나세요?”라고 되물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회사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원칙에 충실했던 것이다.  
 
성공 = 사고방식·열의 능력

세상과 타인을 위해 일부러 손해를 보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
)’라는 덕은 곤란을 이겨내고 성공을 불러오는 강한 원동력이 된다(: 자신을 위할뿐 아니라 남을 위해 불도를 닦는 일).  이나모리 가즈오 리더십은 자신의 열정과
도덕성을 조직 전체에 스며들게 한 결과 꽃을 피우게 된다.
그는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하기 위해선 어떤 것이 좋을지 고민하다 전 직원이 창업 당시의 열정을 끝없이 유지할 수 있는 ‘아메바 조직’을 창안해냈다. 아메바 조직은 회사 전체를 공정별·제품군별로 몇 개의 작은 조직으로 나누고 하나의 중소기업처럼 경영을 맡겨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는 것으로서, 각각의 아메바 조직은 환경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해 끝없이 자기 증식을 해나간다. 3천 개가 넘는 아메바 조직이 지금도 꾸준하게 세포분열을 하고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인생의 성공은 ‘사고방식·열의·능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인생성공 방정식의 창안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재능이 모자라도 열의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절대 질 수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마음가짐이다. 인간으로서 바른 생각을 갖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면 꿈은 반드시 실현된다. 자기 일을 좋아하고 회사를 사랑한다면, 즉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동안 성공의 불씨가 자라난다. 바른 생각을 갖고 부단히 노력하면 나쁜 운명도 좋은 운명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경영자가 많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경영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최근 불교에 귀의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기업은 경영자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도, 경영자의 배를 불리는 도구도 아니다. 종업원과 그 가족의 장래를 챙겨주고, 나아가 인류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것, 이처럼 크고 고매한 ‘대의명분’을 기업하는 목적으로 삼을 때 그 회사는 건전하게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주장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기업은 경영자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도, 경영자의 배를 불리는 도구도 아니다. 종업원과 그 가족의 장래를 챙겨주고, 나아가 인류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것, 이처럼 크고 고매한 ‘대의명분’을 기업하는 목적으로 삼을 때 그 회사는 건전하게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출처 : 조영탁의 'CEO의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교세라, 리더십, 이나모리 가즈오


요르마 올릴라 - 노키아 전 회장
요르마 올릴라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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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를 ‘노키아랜드’라고 부를 정도로 핀란드 경제에서 노키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핀란드의 경제연구소인 ETLA에 따르면 2000년 노키아가 핀란드 경제성장률 5.1%에서 차지한 몫이 1.6%(약 31%)이었다. 또한 노키아 일개 기업이 핀란드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조업 고용의 1/3을 차지했다고 한다. 인구 500여만의 작은 나라 핀란드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세계경제포럼)로 꼽히는데 노키아가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1865년 설립된 노키아는 사업을 급속히 다양화했으며 1970년대 고무, 제지, 케이블 등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핀란드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1988년 노키아는 유럽에서 가장 큰 TV 제조 업체였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컴퓨터 회사였다. 그러나 관련 없는 분야로 확장을 거듭한 탓에 계열사간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으며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노키아는 1980년대 후반 경기후퇴기를 맞아서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게 된다. 회사 존립마저 위태롭던 1992년 요르마 올릴라는 41세의 젊은 나이에 노키아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다. 올릴라 회장은 고무, 제지, 펄프, 타이어, 가전제품, PC 등을 모두 정리하고 당시 회사 매출액의 10%에 불과하던 이동전화 단말기와 정보통신 인프라 부문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펄프사업의 정리는 제지업체로 출발한 노키아의 정체성(Corporate Identity) 마저 부인하는 결단이었다.  
 
1등이 아니면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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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마 올릴라는‘통신관련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세계 시장
을 대상으로, 그리고 부가가치 높은 것만 한다(telecom oriented, focused, global, value-added)’는 전략적 비전을
설정하고 여기에 올인한다. 올릴라는 취임 일성으로“우리는 통신 분야와 함께 살거나 죽는다. 업계 1위가 아니거나 1위가 될 가능성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한다. 휴대전화 이용자가 2004년에는 12억 명 규모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축적한 기술력도 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이런 포기 전략은 그 자체가 커다란 도박이었다. 특히 당시에는 이동전화 사업이 이익을 내기 시작한지도 얼마 안 됐었기 때문에 노키아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휴대전화 수요는 2천만대 수준에 불과
했다. 또한 휴대폰 시장은 스웨덴의 에릭슨, 독일 지멘스, 그리고 미국의 모토롤라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올릴라는 디지털 기술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올릴라의 의지는 확고했다. 올릴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과감히 실행했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1990년대 노키아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아시아, 남미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갔다.  1994년 초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부는 모든 디지털표준(GSM, Gsm1800, TDMA 등)에 맞게 휴대폰을 제작한 최초의 메이커가 되었다. 1997년 노키아는 CDMA 분야에도 진출했다. 현지 판매회사를 개설한 것은 물론이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제작 및 R&D 시설을 건설했다. 노키아는 세계 최고 휴대폰 제작 및 원거리통신 장비 메이커가 되었으며, 현재의 전략이나 조직에 만족하지 않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요르마 올릴라 회장은 회로 설계에서부터 생산, 심지어는 판매까지도 아웃소싱을 했다. 이는 그 당시까지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올릴라 회장의 선택 이후 시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이행했다. 노키아가 주력했던 GSM 중심으로 휴대 전화 표준규격이 설정되는 등 운도 따랐다.  
 
통신문화 아이콘으로 재탄생한 노키아

  1993년 노키아는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든 지 불과 2년만에 23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리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1997년까지 이동전화 사업의 세계적인 선도기업이었던 모토롤라(Motorola)는 디지털 무선기술로 넘어가는 1~2년 정도의 시기를 놓쳐버렸다. 1998년 바로 이 황금시기, 그 때까지는 무명이었던 북유럽 기업 노키아(Nokia)는 단말기 시장 진출 10년 만에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1위에 등극했다. 그 이후 오늘까지 점유율 30~40% 수준을 유지하며, 세계 최고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커넥팅 피플(Connecting People)'이라는 노키아의 모토는 단순히 휴대폰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가 아닌, 통신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요르마 올릴라 회장은 비즈니스위크에서 ‘천재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학부에서 정치학(헬싱키 대학)을 전공했고, 경제학 석사(런던스쿨), 공학석사 학위(헬싱키기술대학)를 추가로 취득했으며 정치학 박사(헬싱키대학)까지 화려한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78년 씨티뱅크에 입사한 그는 85년 노키아로 자리를 옮겨,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92년 노키아 수장에 오른다. 그는 이론과 실무 차원에서 경영자로서의 자격을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요르마 올릴라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과감한 결단력, 전략과 비전 공유능력, 고객 중심 경영과 R&D 등 경영의 전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초일류기업 노키아의 선장 노릇을 훌륭히 수행했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차원에서의 핵심 우수 인재 확보와 엄청난 교육 투자, 그리고 전략적 인사 배치를 통한 경험 축적, 적절한 동기부여를 통한 조직 능력 극대화, 학습조직을 실천함으로써 초일류기업의 기반을 튼튼히 구축했다.  
  요르마 올릴라는 미래형 초일류 기업에 걸맞은 기업문화 구축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젊고 개방적인 조직문화와 실패로 부터의 학습을 장려하는 문화,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노키아 밸류(Nokia value)를 가꿔서 이를 공유하는 것과 같은 전략적 문화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빠른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최하위직에서 그룹 회장까지 5단계에 불과한 수평적 유연조직과 열린 조직을 구축함으로써 임파워먼트를 통한 속도경영과 변화에 익숙한 경영체제를 구축하고자 힘썼다.  
 
기술개발·인간존중이 노키아의 핵

  글로벌 R&D 시스템 구축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노키아의 6만여 종업원 중 1/3은 R&D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아울러 노키아는 14개국에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출액 대비 10% 가량을 신기술 개발에 쏟고 있다. 노키아는‘신기술을 한발 앞서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에 먼저 진입한다’는 정신으로 시장 지향적 R&D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적과의 동침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업체들과 기술협력을 통해 신기술 개발과 신산업에서의 표준 확보에 열중해 오고 있다.  
  노키아의 총 매출액 중 97%는 해외에서 발생한 매출이다. 그만큼 글로벌 경영과 지역적 특성에 맞는 마케팅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산과 마케팅, 그리고 R&D와 인재 확보등 경영의 모든 측면에서 완벽하다 할 정도로 글로벌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실천해 옮겨가는 기업이 바로 노키아다.  
  올릴라 회장은 늘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고, 일반 직원과 함께 회사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긴다. 근로자와 관리자의 벽을 허물기 위해 공장 한가운데 벽 없는 사무실을 만들었다. 사업 매각시 100% 재고용 보장 조건을 고수한 것도 그의 인간존중 경영을 잘 나타내준다. 한마디로 경영의 교과서라 할만하다.

출처 :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노키아, 리더십, 요르마 올릴라


제프리 이멜트 - GE 9대 회장

한국의 기업경영자에게 가장 익숙한 글로벌 경영자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사를 이끈 잭 웰치와 그의 후임인 제프리 이멜트일 것이다. 특히 잭 웰치는 전 세계 기업경영자가 한 번쯤은 그의 카리스마 넘치고 열정적인 경영철학과 전략 등을 눈여겨보았을 만큼 탁월한 최고경영자였다. 반면 제프리 이멜트는 이런 뛰어난 전임 CEO의 후광에 가려 취임 초기에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서서히 잭 웰치와 차별화된 모습으로 현재 각광을 받고 있다.

 잭웰치는 1981년 4월 1일 GE 역사상 최연소(46)로 8대 회장에 취임했다. 잭 웰치는 취임 후 108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표 기업이 삼류로 전락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사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그는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대기업은 반드시 내부의 적에 의해 파멸될 수 있음을 경계했다.

 잭 웰치는 GE를 빠르고 민첩하며 수익성 높은 ‘스피드 보트’로 만들길 임원진에게 강력히 주문했다. 또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부문은 주주에게 악(惡)이다’라는 단호한 인식 하에 ‘고치라, 매각하라, 폐쇄하라’는 슬로건을 주창하고, 1등 내지 2등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재에 대한 성과평가를 냉정하게 실시했다.

잭 웰치는 “내가 생각하는 잔인하고 거짓된 친절은 바로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회사에 계속 붙잡아 두는 것이다. 진정으로 잔인한 것은 그들이 나이가 들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자녀들이 성장하여 교육비가 엄청나게 늘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서야 회사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을 정도다. 그는 과단성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혁신 작업을 통해 GE를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GE를 세계 유수 기업들이 따라하고 싶은 벤치마킹 대상이 되게 했다.

최고의 경영자로 칭송받던 잭 웰치의 뒤를 이은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취임 초기에는 악재에 시달렸다.

특히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는데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내가 GE의 회장이 된 지 며칠 만에 GE가 설계한 엔진을 장착한 비행기가 GE와 보험계약을 맺은 빌딩과 충돌하는 것을 경험했다.” 제프리 이멜트를 바라보는 조직 내·외부의 시각은 불안감 자체였다. 잭 웰치라는 거대한 산을 그가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완전히 빗나갔다.

제프리 이멜트는 초기에는 잭 웰치에 의해 만들어진 GE의 모든 것을 차근차근 재점검하기 시작했고 급격한 변화보다는 조용한 변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성장 면에서는 원가절감 등에 치우친 웰치식 경영보다는 상상력, 한계돌파(Breakthrough) 등을 내세우며 GE의 사업구조에 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2001년 취임 후 기업 인수에 800억 달러를 사용했고, 350억 달러에 이르는 사업을 매각했다. 제프리 이멜트가 매입한 기업은 보건의료, 에너지, 생명과학 등에 집중됐다. 반면 보험과 저성장이 예상되는 사업은 매각 대상이 됐다. 34개 사업군 가운데 절반가량이 포트폴리오 변화를 겪었다. 제프리 이멜트의 M&A에는 철학이 있는데 ‘10~20년 미래 트렌드를 읽고 해당 분야를 선점해 장기 고수익 기반으로 삼는다’는 게 그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초 매각계획을 밝힌 플라스틱 사업이다. 플라스틱 부문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며 GE 사업군 가운데 글로벌화가 가장 잘 돼 있다. 그러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플라스틱 원재료 가격 변동이 워낙 커 향후 경영실적을 예측하기 힘들다”며 매각 배경을 설명했다. 흔히 전임 CEO가 탁월한 성과를 보이면 후임 CEO는 조금 위축되거나 아니면 너무 의욕이 앞서 기업을 망치기도 한다. 잭 웰치와 제프리 이멜트의 경영방식은 기업의 성장을 이끌기 위해 적극적인 M&A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면을 보면 잭 웰치가 현 주력 사업의 경쟁력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기업 인수에 주력한 반면 제프리 이멜트는 새로운 성장축을 찾기 위해 시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느 방식이 반드시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잭 웰치는 그가 활약했던 1980~90년대 원가경쟁력 시대에 최고의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고, 제프리 이멜트는 2000년대 차별화된  경쟁력 시대에 최고의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문지원<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Tag : CEO, GE, 경영, 리더십, 제프리 이멜트


잭 웰치 - GE 전 회장
잭 웰치 전 GE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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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부터 2001년까지 세계 최대 기업 GE를 이끈 전설적인 경영자 잭 웰치 회장이 보여준 리더십의 핵심은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잭 웰치는 1981년 마흔다섯의 나이에, 환경변화에 둔감하고 덩치가 큰 고령의 기업체질과 사업구조를 가진 거대기업 GE의 여덟 번째이자 최연소 회장에 취임했다. 잭 웰치는 취임 직후 당시로서는 획기적 기법인 리스트럭처링(사업구조 조정)과 다운사이징(감량경영)을 통해 GE를 혁신적으로 변모시켰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내보내 중성자탄이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계속되는 혁신을 통해 취임 당시 2백50억 달러 매출을 1천3백억 달러로, 영업이익률은 6%에서 18.9%로 끌어올렸다. 반면 종업원은 4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시가총액은 1백50억 달러에서 회장직을 사임한 2001년 10월 3천8백80억 달러로 25배 이상 끌어올려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만들었다. 당시 기준으로 GE 시가의 10%면 한국 상장기업 전체의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을 만큼 높은 가치였다.
 
  잭 웰치는 병들어가는 GE를 맡아 다양한 경영기법과 탁월한 리더십을 통해 최강 조직을 만듦으로써 20세기를 빛낸 최고의 경영자가 됐다.  
 
잭 웰치로부터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리더십 교훈은 확고한 비전과 그의 철저한 공유에서 찾을 수 있다.
  1999년 잭 웰치 회장의 한국 방문 시 한 경영자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가장 존경받는 경영
자로 선정된 리더십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웰치 회장은 “딱 한 가지입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고, GE의 전 구성원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가슴을 울렁거리게 할 수 있는 크고 대담한 미래 비전을 창출, 모든 조직원들이 이를 공유해 한 방향으로 매진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위대한 성과를 창출해내는 것이 리더의 첫 번째 역할이다.
 
 비전의 중요성, 특히 비전을 모든 구성원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그 비전이 리더만의 비전이 아닌, 조직 구
성원 전체의 꿈과 희망이 되게 하는 것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는 유목민의 유명한 속담 역시 비전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전 공유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전에 대해 최소 7번 이상 조직원들과 대화를 해야 비로소 구성원들이 비전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컨설팅 회사의 조사 결과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자들은 오직 2.4%의 시간만을 미래 구상에 사용할 정도로 비전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한다. 또한 리더의 언어(말) 중 비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잭 웰치는 ‘10번 이상 얘기한 것이 아니면 한 번도 얘기 안 한 것과 같다’고 강조하면서 비전 공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리더에게는 사활이 걸린 핵심 자질이다. 잭 웰치는 커뮤니케이션을 매우 즐기는 리더였다. “나는 GE가 추진하는 모든 일에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나는 어떤 아이디어나 메시지를 조직 전체에 전달하고자 할 때 한 번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해본 적이 없다. 나는 어떤 중요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을 수년에 걸쳐 온갖 종류의 회의 때마다 수없이 반복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나중에는 아예 신물이 날 정도였다. 나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종종 과도한 면이 있었고, 어쩌면 강박관념으로까지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잭 웰치는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모든 조직원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잭 웰치 회장처럼 가치, 비전, 신념, 핵심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전파하고 공유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리더는 사람들이 비전을 이해하고 비전으로 숨쉬게 만들어줘야 한다. 비전이야말로 여러 사람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목적지인 것이다.
 
잭 웰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변화·혁신의 리더’다. 기업 성장과 더불어 관료주의와 대기업병이 확산되는 것은 필연적 현상이다. 잭 웰치는 ‘관료주의를 혐오한다’는 말로 기업경영에서 관료주의와 대기업병이 타파돼야 할 제1의 요소임을 강조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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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제프리 이멜트’ 찾으려 5년간 투자


전 세계적으로 1~2위가 아닌 사업에서의 과감한 철수, 식스시그마, 워크아웃(Work-out), 변화 가속화 과정(CAP), 벽 없는(Boundaryless) 조직 등 오늘날 세간에 널리 알려진 대부분의 혁신 기법들이 잭 웰치에 의해 창안됐거나 혹은 꽃피워졌다.  자연은 변화하지 않는 개체에 무자비하다. 혁신하지 않는 조직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은 규모가 큰 기업이 아니라 변화를 즐길 줄 아는 조직이다. 잭 웰치는 재임기간 내내 끝없는 변화 혁신의 소용돌이를 일으킴으로써 관료주의 타파는 물론, 거대 기업 GE를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날렵하고 유연한 기업(Act like a small company), 조직원 모두가 자신감과 더불어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분위기를 갖고 살아가는, 변화를 즐기는 조직을 만들어놓고 떠났다.
  구성원의 열정과 두뇌를 최대로 활용하는 사람, 이는 모든 리더의 공통점이다. 잭 웰치 리더십의 세 번째 교훈은 사람에 대한 극진한 관심과 투자에서 찾을 수 있다. 잭 웰치에 따르면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한 미래의 지식기반 경제에서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인적자원의 개발, 즉 임파워먼트(Empowerment)이다. 경영자는 한 손에는 물뿌리개를, 다른 한 손에는 비료를 들고 꽃밭에서 꽃을 가꾸는 사람과 같다.”
 
잭 웰치는 자기 시간의 75%를 핵심 인재를 찾고, 채용하고, 배치하고, 평가하고, 보상하고, 내보내는 데 썼다고 말한다.  
 
  회사 자원 중 가장 중요한 자원이 경영자의 시간과 관심이다. 이러한 핵심 자원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잭 웰치는 구두선()이 아니라 실천으로써 사람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는 첩경이라는 명제가 사실임을 보여주었다.  
  잭 웰치 회장은 1983년 낡고 유명무실해진 크로톤빌 연수원 재건 공사에 드는 4천6백만 달러 지출안에 서명할 때 투자회수 기간을 무한대(Infinite)로 적어 넣었다. 핵심 인재 확보와 양성에 대한 투자는 비용과 효과 차원을 넘어 기업 생존의 기본이라는 신념의 표출이었다. 그후 크로톤빌 연수원은 GE 인사 정책의 심장부 역할을 해왔다.
 
  그는 또한 임직원에 대한 평가를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일상적으로 실시했다. 연봉을 책정하거나 스톡옵션을 제공할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복도에서 누군가와 우연히 부딪혔을 때조차 평가를 한다고 얘기하곤 했다.
 
잭 웰치의 뒤를 이은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많은 조명을 받고 있다. 잭 웰치는 후계자 선택과 육성을 위해 무려 5년간의 긴 세월을 고민하고 투자했다. 리더는 성과를 창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진정 훌륭한 리더는 당대가 아닌 자신이 떠난 이후에도 더 좋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고성과 조직을 만들어놓고 떠나는 사람이다. 그것이 리더의 마지막 임무다. 그렇기에 제프리 이멜트 현 GE 회장이 CEO로서 최고의 성과를 창출한다면 그 공의 상당 부분은 잭 웰치에게 돌아가야 한다.

출처 : '조영탁의 CEO의 리더십 탐구'

Tag : CEO, GE, 경영, 리더십, 잭 웰치


메리케이 애쉬 - 메리케이 코스메틱스 회장
이익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긴 여장부

세 계 각국에서 부는 여풍(女風)이 드세다. 특히 재계에서 부는 여풍은 다른 분야보다 훨씬 강하다. 글로벌 시대에 아주 자연스런 이 같은 현상은 그러나 40~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본주의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메 리 케이 애쉬 회장(1918~2001)은 여성 CEO가 드문 시절인 1963년 불혹을 넘긴 45세 나이에 전 재산 5000달러를 투자해 메리 케이 코스메틱스라는 화장품 회사를 설립했다. 그녀가 주목을 받는 건, 적지 않은 나이에 여성 CEO가 드문 시절에 창업을 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 중심의 독특한 경영 때문이다.

메 리 케이는 회사설립 이후 2005년 세계 3대 화장품 직판회사, 매출 10억 달러, 37개국에 130만 명의 독립 뷰티컨설턴트를 보유한,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포천지 선정), '여성을 위한 10대 우수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개인적으로는 1985년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명에 선정된데 이어 1996년에는 미국 비즈니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겉모습보다 주목을 받는 것은 직원들이 “다시 태어나도 메리 케이 코스메틱스에 근무하고 싶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는 점이다.
이 렇듯 직원들이 다시 태어나도 메리 케이 코스메틱스에 근무하고 싶다고 호언장담하는 데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메리 케이의 독특한 경영 때문이다. 이러한 경영은 직원들을 한데 묶어놓은 것은 물론 회사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메리 케이의 인간 중심 경영론은 한마디로 말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경청과 칭찬으로 요약된다.

“대우받기를 원하면 다른 사람을 대우하라”

사 실 메리 케이는 어렸을 때 남보다 뛰어난 게 별로 없는 평범한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머니의 끊임없는 격려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딸에게 늘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했고, 그녀는 그 교훈을 마음 속 깊이 새겼으며 그러한 정신은 회사설립부터 경영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배어 있었다.
메 리 케이는 ‘황금률’(Golden Rule system of management)이라는 경영방침에 따라 회사를 운영했다. 황금률이란 자신이 대우받기를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것이다. 그녀는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가슴에 ‘나는 존중받고 싶다’라고 쓰여진 목걸이를 차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대한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경청을 중요시했다. 실제로 ‘경청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수없이 많은 스케줄과 업무, 미팅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공감어린 경청으로 대했다.
“ 북적대는 방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 그 방에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그를 대한다. 모든 것을 무시하고 그 사람만 쳐다본다. 고릴라가 들어와도 나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녀의 삶 자체가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경청으로 일관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회 사와 직원을 가족처럼 여긴 그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는 바로 ‘P&L’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손익계산서(Profit & Loss)를 뜻하는 ‘P&L’이 메리 케이에게는 ‘사람과 사랑’(People& Love)을 의미했다. 회사의 최대 목적인 이윤창출도 중요하지만 이는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그녀가 대통령의 초청을 거절한 까닭은?

사 람과 직원 사랑을 소중한 가치로 여긴 그녀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는 대통령 주재 리셉션 초청을 거절한 것이다. 신규 뷰티 컨설턴트들과의 선약을 지키기 위해 초청 당시 사업차 워싱턴에 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초청을 거절하고 댈러스에 있는 신입사원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달려간 것이다.
이 처럼 메리 케이가 직원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공연하게 “신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을 만들 시간이 없다. 그는 의미가 있는 사람만을 만든다”고 말하곤 했다.
신 을 종종 이야기하는 메리 케이를 두고 <식스티미니츠(60Minutes)>지의 몰리 세이퍼가 메리 케이는 신을 이용해 자신의 야심을 채우고 있다고 비난하자, 그녀는 세이퍼가 거꾸로 알고 있다고 곧바로 응수했다. 그녀는 신이 그녀를 이용해 그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메리 케이는 또한 긍정적인 사고를 무척 중요시했다. 회사를 세운 후 그녀는 “좋다”는 단어의 긍정적 파워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누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항상 “좋다”라고 말했다.
그 녀의 이러한 태도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하면서 이들은 더욱 열성적이 되었고 실적은 급증했다. 그녀는 그래서 "열정적으로 행동하면 당신은 열정적이 된다. 열정이 없이 그 어떤 위대한 것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메 리 케이는 직원들을 제대로 대우하는데도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메리 케이 코스메틱스의 상징이 되어버린 ‘핑크 캐딜락’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마도 마케팅 역사상 가장 인지도가 높은 상징 중 하나인 핑크 캐딜락은 메리 케이 코스메틱스가 생산하는 제품인 화장품을 판매하는 데 있어 뛰어난 실적을 올린 사람을 인정해 주기 위한 일종의 상이다.

인간중심 경영으로 직원의 잠재력 극대화

고 객을 섬기는데도 메리 케이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맨 처음 직원을 고용했을 때 작은 핑크색 카드에 고객을 위한 서비스 약속을 자세히 적어 나누어 주었는데 지금까지도 메리 케이 코스메틱스는 여전히 그 카드를 신입 사원들에게 주고 있다.
판 매 조직과의 관계와 또 그들과 고객과의 관계 때문에 실수를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배어 있는 것이다. 형편없는 서비스는 고객을 바로 떠나보내며 더구나 그 고객은 자신에게 물건을 판 사람과 그 제품에 적힌 회사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식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현 대 경영에 있어서 상당수의 CEO들은 직원들의 헌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급여, 직업의 안정성, 훌륭한 복리후생 등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성장을 도와줄 수 있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직원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메리 케이는 이 세상을 떠났다.


<CEO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Tag : CEO, 경영, 리더십, 메리케이


장루이민 - 하이얼 그룹 회장
원조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만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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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특성을 표현하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만만디(慢慢的’이다. 지금이야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느긋하게, 천천히’를 뜻하는 만만디는 아직도 중국인의 성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만만디 정신이 흐르면서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에서  최고의 기업가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비(非)중국적인(?) 인물이다. 바로 장루이민(張瑞敏) 하이얼그룹 회장이다.

장루이민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기절한 물고기를 살려내는 경영자'라는 호칭부터 '중국의 잭 웰치', '중국 경제를 선도하는 대스승(大師)'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기업가이다.
1999 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선정한 '비즈니스 리더 26위', 2004년 비즈니스 위크 선정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8인', 2005년 FT가 선정한 '세계에서 존경받는 경영인 50인',  베이징대 중국브랜드연구소 선정 '2005년 중국 최고의 기업경영자' 등의 평가는 그가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장루이민이 이처럼 최고의 찬사를 받는 것은 23년 전, 중국 최악의 기업으로 손꼽혔던 하이얼(당시 칭타오냉장고 공장)을 중국의 대표 기업이자 세계적인 흑자기업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장루이민이 칭타오냉장고 공장(1992년 회사명을 하이얼그룹으로 바꿈)을 맡은 것은 1984년. 회사는 147만 위안(1억9000만원)의 적자를 기록, 난파선과 같은 부실기업이었다. 22년 후인 2006년. 하이얼은 전 세계에서 1080억 위안(14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 4위의 백색 가전회사로 자리 잡았다. '22년 만에 3만1000배 성장한 기업',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가전업체'라는 평가를 얻은 것은 장루이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절한 물고기를 살려내는 중국의 잭 웰치’
산둥성 칭다오가전공사 부경리이던 장 루이민은 1984년, 다 쓰러져 가는 칭다오냉장고 공장장을 맡게 된다. 그가 오기 전 이미 전임 공장장 3명이 불명예 퇴직한 상황이었다. 부임 후 공장을 둘러 본 그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먼지투성이인 위생상태는 둘째 치고 공장라인 곳곳에는 직원들이 대소변을 본 흔적까지 있었다. 직원들이 공장 비품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것도 다반사였다. 35세의 혈기왕성한 그는 직원들의 정신개조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중국에서 유명한 '장루이민식 경영이론'의 기초가 된 '13조 관리규정'이 탄생한다. 여기에는 물론 공장 내 대소변을 금지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이어 심혈을 기울인 것은  품질관리였다. 제대로 된 제품만이 기업이 살길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루는 당일 생산품인 냉장고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품질검사를 해보니 76대가 불량품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불량품 모두를 직접 쇠망치로 때려 부수었다. 당시 냉장고 한 대의 가격은 공장 노동자 월급을 반평생 모아야만 살 수 있는 '부의 상징'이었다.  이어 "이번 불량품의 대가는 내가 물기로 하고 월급을 전액 반납하겠다. 대신 이 시간 이후부터 나오는 불량품은 당사자의 월급에서 삭감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직원들 사이에 '품질은 기업의 생명선'이라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다.
장 루이민은 또한 철저한 고객제일주의를 기업의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는데 몇 가지 일화를 보면 그의 신념이 잘 드러난다. 1996년 쓰촨성의 한 농민이 "하이얼의 세탁기로 고구마를 씻었더니 흙과 모래 때문에 파이프가 자주 막힌다"는 클레임을 제기하자 장루이민은 임직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구마세탁기' 제작을 지시했다. 1998년 4월 이렇게 탄생한 세계 최초의 고구마 세탁기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지금도 1년에 10만여 대가 팔리고 있다. 또 10여 년 전에는 하이얼 서비스센터 직원이 광둥성 한 시골에 세탁기를 배달해 주려고 나섰다. 그런데 도중에 차에 이상이 생겨 움직일 수 없게 되자 90㎏짜리 제품을 등에 지고 2시간 넘게 목적지까지 걸어가서 배달, 역시 하이얼의 직원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장루이민 식(式) 경영이론 세계가 주목
장루이민의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많이 일한 사람이 많이 받고, 적게 일한 사람은 적게 받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받지 못한다(多勞多得, 少勞少得, 不勞不得)고 강조하는 그는 평생고용을 뜻하는 철밥통을 타파하고 철저한 능력주의 인사와 목표관리경영(MBO)를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하이얼의 기본급 비중은 30% 정도에 불과하며 목표를 80% 이상 채우지 못하면 최저 생계비 정도만 지급한다. 인재선발도 3공(공평, 공정, 공개) 원칙에 입각해 시행하고 있다.
또한 "시장에서 기업 위치는 경사면에 놓인 공과 같다. 기업이 커질수록 뒤로 밀리는 힘도 커진다. 뒤로 밀리지 않도록 하려면 관리능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사면 위로 공이 올라가게 해야 하는데 이 힘은 바로 창의력이다"는 이른바 '경사지공이론(斜坡球體論)'과 직원과 회사가 하나가 된다는 ‘인단합일(人單合一)’ 등의 다양한 이론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연구 대상이 됐다.
한편 장루이민의 '뚫기 어려운 선진국 시장을 먼저 공략해 성공하면 나머지 시장의 진출은 쉽다'는 ‘선난후이(先難後易)’ 경영철학에 기초해 하이얼은 2000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냉장고 생산 공장을 세운 것을 시발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03년 연락사무소를 세워 진출한 뒤 이듬해 ‘하이얼코리아’라는  법인으로 전환, 현재 본격적인 영업을 진행하고 있다.
직원이 수백 명밖에 안 되던 칭다오냉장고 공장을 인수, 22년 만에 직원 5만 명을 거느린 하이얼그룹으로 변모시킨 장루이민. 지금도 출장 갈 때 비서도 안 데리고 혼자 가는 바람에 영접하는  측에서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 소탈한,  그의  '세계 1위의 가전업체'라는 목표 달성 여부에 앞으로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CEO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1. 안하면 몰라도 한다면 최고가 되어야한다 : 탁월한 기업문화의 추구

2. 내일의 목표는 오늘보다 높아야 한다 : 일일처리 일일향상을 통한 자질 관리

3. 모든 사람이 인재다. 간택보다는 경쟁이 낫다 : 행동을 중시하는 인재 관념

4. 먼저 시장을 확보한 후 이익을 모색하라 : 우위를 선점하는 브랜드 방침

5. 자신을 부정하고 시장을 창출하라 :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 전략

6. 제품이 아니라 신용을 팔아라 : 정성을 다하는 서비스

7. 안으로는 기업문화, 밖으로는 시장 : 쇼크에 빠진 물고기 잡아먹기를 통한 확장 방식

8. 국내에서는 유명 브랜드로 성장할 수 없다 : 어려운 일 먼저, 쉬운 일은 나중에 하는 국제화 전략


Tag : CEO, 경영, 리더십, 장루이민, 하이얼


허브 캘러허 - 사우스웨스트 항공 전 회장
그는 매일 직원들과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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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록에 들기 위해 리더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덕목은 직원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 편집장이 밝힌 ‘가장 존경받는 CEO’를 선정하는 기준이다. ‘자기 자신을 이끌려면 당신의 머리를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려면 당신의 가슴을 사용하라’는 격언 또한 풍부한 감성을 갖춘 서번트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직원들과 사랑에 빠진 존경받는 경영자, 봉사와 섬김의 서번트 리더십을 대표하는 CEO로는 단연 사우스웨스트항공 허브 켈러허 전 회장을 들 수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1973년 창업 이래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이익을 올린 유일한 미국 항공사이다. 이는 치열한 경쟁으로 부침이 심한 항공산업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사우스웨스트는 타 항공사 평균 수준에 약간 못 미치는 급여수준에도 불구하고 1999년부터 일하기 좋은 기업(GWP:Great Work Place)에 연속해 선정되고 있다. 46분기 연속 흑자, 30년 평균 주가수익률 1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2위, 미국 항공사 중 유일한 노사 무분규 기업, 9·11테러 이후 다른 대형 항공사들이 줄줄이 도산 위기에 처했을 때도 단 한 명의 인원 감축을 하지 않은 회사 등은 모두 사우스웨스트항공을 수식하는 말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성공은 공동 창업자이자 1978년부터 2001년까지 최고경영자를 맡은 허브 켈러허 전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에 힘입은 바 크다.
 
새는 좌우 양 날개로 날아간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냉철한 전략과 더불어 따뜻한 마음으로 직원을 움직이는 감성이 바로 리더의 양 날개이다. 허브 켈러허는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 여러 항공 노선을 대도시 터미널로 집중시키는 방식) 개념으로 대표되는 항공산업의 오랜 게임의 룰을 철저히 파괴하고 새로운 게임의 룰을 적용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대륙간 장거리 운항, 대형화, 시장점유율 중시 등 일반 항공사의 전통적 전략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대신 국내 단거리 노선, 논스톱 운항, 낮은 요금, 높은 수익성에 초점을 맞췄다. 기종도 구매시 유리한
가격 협상, 낮은 재고 유지비용, 정비 품질을 고려해 보잉 737 하나로 통일시켰다.  불필요한 서비스는 제거하고 단거리 고객이 요구하는 높은 안전성, 정시 발착, 낮은 요금에 주력했다. 허브 켈러허는 지상의 자동차와 경쟁한다는 생각으로 초저가 서비스 전략에 맞춰 회사의 모든 시스템과 서비스를 정렬시켰다. 그 결과 운항 초기 댈러스 - 샌안토니오 간 기존 항공사 요금이 69달러인 데 반해, 사우스웨스트는 겨우 15달러에 서비스를 함으로써 많은 고객을 끌어왔다. 승객들은 식음료 서비스도, 지정석도, 화물 자동연계 서비스도 없지만 사우스웨스트를 즐겨 찾는다. 단순히 고객이 찾아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사우스웨스트는 한달 평균 3천5백여 통에 이르는 감사편지를 고객들로부터 받는다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한다.  
 
허브 켈러허는 파리 취항, 보잉 747기 등 겉멋에 휘둘리지 않고, 수익성 제고라는 전략적 원칙을 매우 보수적으로 고수했다. 또한 경쟁사인 아메리카웨스트보다 10억 달러 매출을 달성하는 데 3배의 시간이 소요된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는 블루오션 전략을 이미 30년 전에 적용한 탁월한 전략가였다. 허브 켈러허 회장은 정비공, 사무실 직원 누구나 자사의 비전, 가치, 철학을 허브 켈러허 자신보다 유창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공언한다. 전체 임직원이 비전과 가치를 철저히 이해하고 실천했다는 데서 전략가로서 그의 탁월성을 찾을 수 있다. 어느 회사를 막론하고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 자만심에 빠지기 쉽다. 그는 늘 성공에 따른 자만심을 경계했다. “우리 직원들은 내가 11번의 불경기를 예언했는데 실제로 불경기는 세번뿐이었다고 농담한다”고 전한다.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 경영자

허브 켈러허 회장은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 경영자’로 불릴 정도로 유머 경영, 혹은 펀(Fun) 경영을 중시했다. 그는 ‘유머는 조직의 화합을 위한 촉매제’라며 ‘일은 즐거워야 한다’고 주장 했다. 회사 로고를 둘러싼 경쟁사와의 분쟁해결 과정은 그의 유머 경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협상 당시 허브 켈러허 회장은 경쟁사 최고경영자에게 느닷없이 팔씨름으로 승부를 겨루자는 엉뚱한 제의를 해, 상대방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팔씨름에서는 졌으나 상대방으로부터 로고 공동사용권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점잖은 오찬장에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으로 나타나기, 청바지 입고 이사회 참석하기, 토끼 분장을 하고 출근길 직원 놀래기 등 허브 켈러허의 펀 경영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경영자의 근엄한 권위는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허브 켈러허가 펀 경영으로 얻으려 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그는 내면에서부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기업만이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항공산업 같은 장치산업도 결국 기계장치가 경쟁력이 아니라 사람, 문화, 전략 등이 경쟁력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유머와 인간존중을 통해 경계를 허물고, 수직적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조직의 창조성을 극대화시켰다. 1996년 창립 25주년 기념식에서 허브 켈러허 회장은 사업전략을 구상할 때 고객, 직원, 주주들 가운데 단연코 직원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모든 직원들이 회사의 주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했으며, 모든 경영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또한 현장에 가능한 한 많은 권한을 위임했으며,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다.

직원 행복을 우선 챙기는 CEO, 허브 켈러허는 “기업들이 거의 종교적 믿음처럼 신봉하고 있
는 ‘고객은 항상 옳다’라는 말은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면서, ‘기내에서 폭음을 하고, 이유 없이 직원을 괴롭히는 불량(?) 고객’은 과감하게 해고(?)하라”고 주장했다. <포천>이 인터뷰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한 수리공은 이렇게 말했다. “기내 청소원 휴게실에 일요일 새벽 3시에 도넛을 들고 나타나고, 작업복을 입고 비행기 청소에 나서는 최고경영자가 허브 켈러허 말고 또 있을까요?” 리더십은 그가 리드하는 사람들에게 충실하고 헌신적으 로 봉사하는 것이다. 그들과 인생의 즐거움은 물론 괴로움도 함께 하는 것이다. 허브 켈러허는 수천 명 직원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를 딱 한 번 만났는데도 일 년 후 다시 만났을 때 그가 내 이름을 기억했습니다”라고 많은 직원들이 말한다.
 
보스 아닌 직원을 사랑하는 친구
리더가 구성원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할 때 리더의 비전은 사람들의 소원이 된다. 그 영향력은 놀라우리만치 크다. 직원들은 자신이 리더로부터 인간적 대우와 사랑을 받게 될 때 외부 고객들에게 똑같은 사랑을 베풀게 된다. 그렇게 사랑받은 직원들은 노사분규 한 번 일으키지 않고, 고객에 대한 밀착 서비스, 주인의식, 일에 대한 놀라운 몰입을 통해 결과적으로 높은 수익으로 보답한다.  1994년 어느 날 <USA 투데이>지에 다음과 같은 전면광고가 실렸다.  ‘우리는 허브 씨에게 우리의 이름을 모두 기억해주시고, 맥도날드 하우스를 지원해주시고, 추수감사절에 선물을 주시고, 모든 사람에게 키스를 해주시고, 들어주시고, 이윤이 남는 항공회사로 키워주시고, 휴일 파티에 노래를 불러주시고, 보스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주신 것에 대해 경영자의 날을 맞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 광고는 허브 켈러허의 리더십에 감복한 1만6천여 명의 직원들이 스스로 비용을 각출해 실은 것이다. 허브 켈러허에 대한 사랑의 표시였다. 이러한 애정 표현은 리더가 직원들과 친밀해지려는 진지한 노력을 할 때만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통제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봉사함으로써 더 큰 조직의 안정과 성장을 이뤄내는 사람, 이런 사람이 훌륭한 리더이다.  
 
허 브 켈러허가 펀 경영으로 얻으려 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그는 내면에서부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기업만이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결국 기계장치가 경쟁력이 아니라 사람, 문화, 전략 등이 경쟁력임을 제대로 인식한 것이다.

조영탁의 'CEO 리더십 탐구'.

 
 
 
Tag : CEO, 경영, 리더십, 사우스웨스트, 허브 캘러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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